[조성렬의 신한반도 비전]김정은 ‘새로운 길’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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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조성렬의 신한반도 비전]김정은 ‘새로운 길’의 한계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4. 30.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밝힌 ‘새로운 길’이 윤곽을 드러냈다. 4월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그는 “우리의 힘으로 부흥의 앞길을 열 것”이고 “세계 모든 평화애호역량과 굳게 손잡고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작년 3월26일 중국, 11월3일 쿠바, 금년 3월1일 베트남, 4월25일 옛 사회주의 종주국인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을 하는 등 국제연대 재구축에 나섰다. 동시에 김정은은 “조·미 대결의 초침”이 움직이게 될 것이라고 미국에 경고하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라고 촉구하며 한국을 미국으로부터 떼어놓으려 하고 있다. 4·27 판문점선언 1주년을 즈음해 북한 매체들은 한·미동맹을 비난하며 남북관계의 자주적 해결을 촉구했다. 작년 6월12일 첫 북·미 정상회담 때 김정은이 잘못을 인정한 “그릇된 관행들”이 되살아난 느낌이다.


김정은은 4월16일 공군부대 비행훈련, 다음날 신형 전술유도무기 사격시험을 참관하는 등 이틀 연속 군사행보에 나섰다. 그러면서도 25일 북한 조평통은 한미연합공중훈련이 남북군사합의 위반이라고 항의하고, 27일 조선중앙통신은 축소 실시된 ‘동맹-1연습’을 침략전쟁 연습이라며 “북남, 조·미 수뇌상봉들에서 이룩된 합의에 대한 난폭한 위반”이라고 비난하였다. 김정은이 시정연설에서 평화기류가 공고한 것이 아니라며 북한군에 “강력한 군력”을 촉구한 것과 논리적으로 모순된다.


그렇다면 북한의 ‘새로운 길’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김정은이 주요국 정상들에게 핵 포기를 약속하고 작년 당 전원회의 때 핵실험, 중장거리·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지를 결정한 순간부터 북한은 악자(惡者)에서 약자(弱者)의 지위로 내몰렸다. 북한이 아무리 자력갱생 구호를 내걸고 국제연대를 복원해 ‘새로운 길’을 가려 해도 마땅한 정책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병진노선으로 돌아가 약속들을 깨는 순간, 네 번이나 찾아가 어렵게 회복한 북·중관계와 새로 구축한 북·러관계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북한이 전략도발을 재개하면 북·미 대화가 단절되고 한반도는 다시 군사충돌의 위기상황에 빠져들 것이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가속화하는 명분을 얻고 북한은 경제번영의 기회를 잃게 되고 남북의 평화공존과 통일은 더 멀어지게 된다. 연말까지는 북한이 병진노선이라는 ‘옛길’로 돌아가지 않겠지만, ‘새로운 길’도 성과를 거둘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남측이 진정으로 우려하는 상황은 트럼프가 북·미 비핵화 협상 타결을 2021년 제2기 출범 이후로 미루고, 내년 대선 때까지 상황관리에 주력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 주도의 엄격한 대북 제재가 계속되고 남북관계도 정체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더러 “좌고우면하지 말라”고 겁박한다고 한국이 국제제재망에서 홀로 이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네 번이나 만나 ‘한 참모부’를 약속하고 푸틴 대통령과 ‘다자 안전보장’의 지지를 얻었어도,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조차 대북 제재망에서 이탈하지 못하는 것이 엄연한 국제현실이다.


북한은 연말까지 기다리다가 미국이 북측 희망대로 계산법을 바꾸지 않으면, 내년 봄부터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 등 전략도발을 벌여 트럼프의 재선 가도에 재를 뿌리고 한국 총선에 영향을 주려는 심산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오판이다. 오히려 트럼프의 강경대응으로 보수파 결집을 이뤄 대통령선거에 영향도 못 미치면서 한국 내 평화세력만 궁지에 몰아넣을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김정은이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갖고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제3차 조·미 수뇌회담을 하자 한다면 한 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고 밝힌 점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쉽게 입장을 바꾸기 어렵고 대선 캠페인이 시작되면 입장을 바꾸기가 더 어렵다는 점을 북측은 알아야 한다. 미국 입장을 유연하게 하려면 중재자든 당사자든 한국의 역할을 믿고 다시 한번 나설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우리 정부도 비핵화 동력을 살리고 협상 타결을 위해 다음과 같은 일들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첫째, 한·미관계의 신뢰를 바탕으로 미국이 북·미 협상을 후순위로 미루지 않도록 설득해 비핵화 동력을 유지하고 대화 재개를 이끌어내야 한다. 4월11일 한·미 정상회담은 이를 위한 외교적 노력이었다. 둘째, 비핵화 타결을 이루기 위한 창의적 해법을 만든 뒤 이를 근간으로 미국과 북한을 견인해야 한다. 창의적 해법을 만들기 위해선 민관 전문가들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셋째, 맞춤형 대북정책을 구사해야 한다. 당분간 남북 교류협력은 대북 제재와 무관한 분야에 국한하되, 정치·군사 분야에서 속도를 낸다. 평화협정 논의 착수와 군비통제 이행으로 한반도 비핵화 여건의 조성과 실질적 평화공존체제 구축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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