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형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 교수
쿠바 엘리트 내부에 경제개혁을 앞당기지 않으면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오래전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 사회주의가 무너진다면, 국민 스스로 무너뜨리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나라는 스스로 파괴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이를 파괴할 수 있다. 그러면 잘못은 우리 책임이 될 것이다.” 그동안 미국의 경제봉쇄에 모든 책임을 돌리던 카스트로 형제도 내부의 문제점을 직시한다. 라울 카스트로도 권좌에 오르자마자, 부패 청산과 변화에 대해 저항하는 관료제를 질타했다.

사람들은 일을 하는 체하고, 정부는 임금을 주는 체한다. 사람들은 부족한 임금을 보전하기 위해 암시장에 뛰어든다. 부정부패도 심각하다. 피델의 주문으로 행해진 2005년 조사에 따르면, 2000개 주유소의 절반이 기름을 외부로 빼돌린다. 그 양도 총공급량의 80%나 된다. 라울이 등장한 이래 수많은 고위급 인사들이 경질되었지만, 여전히 부패·회계조작·빼돌리기 스캔들은 줄어들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쿠바를 ‘유기농의 천국’처럼 묘사하지만, 사실 농업생산성은 아주 낮다. 식량의 83%를 수입하지만, 660만㏊의 농지 가운데 360만㏊가 방치돼 있다. 커피도 베트남에서 4700만달러어치를 수입한다. 한때 쿠바는 베트남에 커피 영농기법을 전수했다. 고등교육을 받은 국민은 농사일을 기피한다.
고령화 사회의 그림자도 두렵다. 쿠바 청년층은 고등교육을 받고 있지만, 적당한 취직자리가 없다. 취업을 한들 기대수준에 미달하고, 가족 부양을 생각하면 암울해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인구의 18%가 60세를 넘었다. 20년이 지나면 30%를 넘는다. 연금제도의 부실화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젊은 부부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다.
심각한 경제위기에 2010년 12월1일부터 석달 동안 약 900만명의 쿠바인이 16만3000차례 회합을 가졌고 사회경제 개혁안을 토론했다. 여기서 도출된 311개의 개혁조치는 올해 4월18일 제7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승인되었고, 8월1일에 열린 의회에서 최종적으로 통과됐다.
첫째, 노동력 구조에 큰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쿠바 정부는 국영부문 인력을 10%가량 정리하는데, 약 50만명이 퇴출된다. 퇴출된 사람들은 과거와 달리 임금의 60%에 해당하는 실업수당을 5개월까지 받게 된다. 과거에는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과거 임금의 100%를 받았다. 이제는 바로 자영업자, 임금노동자, 아니면 농부의 길을 택해야만 한다.
둘째, 대량의 실업자들에게 취업 기회를 주기 위해 민간부문을 대폭 활성화한다. 178개의 업종이 민간부문으로 이관되었다. 이 가운데 83개 업종은 임금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다. 개혁조치가 발표된 지 6개월 만에 자영업자는 15만7000명에서 32만명으로 증가했다. 약 50만명 수준에서 안정화될 것이다. 정부가 노리는 것은 실업자 해소 외에도 자영업자 50만명이 낼 세금 수입이다.
셋째, 정부는 의료와 교육에 대한 투자는 계속하지만, ‘불필요한 무료 수혜와 과도한 개인적 보조금’을 줄이기로 했다. 라울은 배급제가 “해를 거듭하면서 경제에 무거운 부담을 지우고, 노동의욕을 저해하며, 다양한 불법의 원천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10년 9월 이래로 담배 배급제를 없앴고, 쌀과 설탕의 배급 물량도 줄여 시장에서 맘대로 사고팔게 했다.
넷째, 라울 정부는 고위 보직의 경우 재직기간을 10년으로 제한했다. 관료층의 고령화를 막고 책임 있는 보직의 체계적인 쇄신을 제도화한 것이다. 이를 통해 쿠바 사회주의 체제에서 고질적인 의견 부재, 무책임, 기회주의를 척결하고자 한다.
지난 2년간 라울 카스트로 체제는 개혁과 개방 드라이브를 가속화했다. 쿠바의 경제개혁은 늘 그랬지만 경제위기 때에 시작한다. 그러다가 개혁조치가 작동해 경제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개혁 동력은 둔화된다. 다시 보수파의 입김이 강화되고, 게이트 키퍼로서 국가가 민간부문을 억압한다. 과연 이번에는 이런 수순을 벗어날 수 있을까?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반응형
'경향 국제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로의 성장통 (0) | 2011.09.25 |
---|---|
잘가라 원자력 (0) | 2011.09.20 |
미국의 비인간적 ‘영장류 실험’ (0) | 2011.09.07 |
중동의 민주화와 오바마 독트린 (0) | 2011.09.04 |
불타는 산티아고 (0) | 2011.08.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