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시진핑과 노포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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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특파원칼럼]시진핑과 노포 외교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4. 5.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28일부터 2박3일간 체코를 방문해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수교 후 67년 만에 체코를 첫 방문한 중국 정상이라는 점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었다. 시 주석은 육상·해상 실크로드를 새로 잇는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체코의 협력이 절실하고,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은 다뉴브-오데르-엘베 운하 건설 등에 중국 자금이 필요하니 이해관계는 딱 맞아떨어졌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더 띄운 것은 제만 대통령이 선물한 체코 제화업체 바타의 신발 세 켤레다. 시 주석은 어린 시절 체코슬로바키아 출장을 다녀온 아버지 시중쉰 전 중국 부총리에게 바타 신발을 받았다. 그가 처음으로 받은 ‘외제 물건’이 바로 이 신발이었다. 체코 측은 당시의 디자인과 포장을 특별히 주문해 시 주석에게 선물했다. 봉황망 등 현지 매체들은 전문가 말을 인용해 “선물은 작지만 마음은 지극했다” “인간미 넘친다”며 높이 평가했다. 체코는 122년 역사의 제화업체 덕분에 시 주석에게 대를 이은 인연을 과시할 수 있었던 셈이다.

노포(老鋪)는 외교 무대에서 친근감을 표시하는 역할로 종종 등장했다. 1972년 중·일 수교를 계기로 방중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일본 총리는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에게 “육필거가 아직 있느냐”고 물었다. 육필거(六必居)는 1530년 문을 연 베이징의 장아찌 가게다. ‘육필거 안부’로 중국에 대한 관심을 표현한 것이다. 당시 저우 총리는 “있다”고 자신있게 대답했고, 이후 육필거 간판 글씨를 금빛으로 바꿔주었다고 한다. 노포는 역사도 길어야 하지만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특색있는 에피소드가 있어야 한다. 이 방면의 스토리텔링에서는 중국이 앞선다. 오리구이로 유명한 전취덕(全聚德) 본점을 가면 ‘몇 번째 오리를 먹고 있다’는 기념카드를 주는데 마릿수가 억 단위를 넘는다. 저우언라이 총리는 생전 전취덕에 27차례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아꼈다. 그는 “전취덕은 부족함이 없고 모여서 흩어지지 않으며 인과 덕이 가장 높은 곳에 다다랐다(‘全’而無缺, ‘聚’而不散, 仁‘德’至上)”는 3행시를 지어 선물했다. 전취덕에서 주는 기념카드에는 이 글이 인쇄돼 있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오른쪽 뒤)가 휠체어에 앉은 아버지 시중쉰 및 가족들과 함께 한때를 보내고 있다._연합뉴스

음식점 도일처(都一處)의 유래는 17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몰래 순시를 나갔다 음식점을 찾지 못한 건륭황제가 우연히 들어간 도일처에서 식사를 맛있게 한 후 이름을 지어줬다는 것이다. 건륭황제는 ‘이 시간에 문을 연 곳은 수도에서 오직 이곳뿐’이라는 뜻의 도일처라는 이름을 선물했다. 가게 안에는 도일처에 온 건륭황제와 주인이 현판을 받는 내용의 그림이 걸려 있다. 손님들은 이 그림 아래서 음식을 먹으며 건륭황제와 얽힌 이야기를 떠올릴 것이다.

중국 상무부가 엄격한 절차를 거쳐 인정한 노포인 중화노자호(中華老字號)는 베이징에만 67개가 있다. 1651년 세워진 가위·칼 가게 왕마자(王麻子)는 “세상의 번뇌는 전부 자를 수 있지만 우정만은 자를 수 없다. 선물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왕마자를 보내라”는 글귀를 가게에 적어놓았다. 가게가 품은 역사의 흔적도 자르지 않고 모아 왕마자 박물관에 전시했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자주 찾았다는 수제 모자 가게 성석복(盛錫福)도 모자문화박물관을 두고 있다. 이들은 시대별로 변천해 온 제품을 전시하고 발전 과정을 소개하면서 스스로 가치를 높인다.

한국은 보존하는 것보다는 없애고 새로 만드는 데 익숙하다. 600여년 서민의 숨결이 깃들어있던 피맛골도 사라졌고, 서울을 대표하는 명소 중 하나인 노량진 수산시장은 신축건물 이전을 두고 갈등 중이다. 노포가 가지고 있는 역사와 이야기의 힘은 강하다. 각 나라의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외교 현장에서도 힘을 발휘할 정도다. 그러나 우리는 몇 군데의 노포를, 또 노포에 얽힌 몇 가지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가.


박은경 | 베이징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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