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선포는 중국 외교에서 군부의 입김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베이징 외교소식통은 “이번 조치는 현상유지를 주장하는 외교 라인보다 국방 라인에서 건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했다. 중국 군부가 긴장국면을 조성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강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만만치 않다. 군부의 득세는 대화를 통한 외교보다 힘을 중시하는 행태가 앞으로 두드러질 것임을 예고한다. 시진핑 체제가 2022년까지 이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로 아찔하다.
중국은 1840년 영국과의 아편전쟁 후 서구 열강의 반식민지로 전락했던 치욕스러운 역사를 갖고 있다. 14개국과 맞댄 국경선과 해안선을 경계하려면 강한 군대는 필수적이란 생각이 확고하다. 더구나 일당 체제를 지키려면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이 금과옥조가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현 지도부의 특수성이 가미되고 있다. 분석가들은 일찍이 시진핑 체제가 군부와 유착관계에 빠질 가능성을 경계해 왔고, 국익 수호를 위해서라면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자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권력을 공고히 하고 내부의 모순을 봉합할 시간도 벌어야 한다. 국민들의 시선을 외부로 돌려야 할 필요성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제3차 한중 국방전략대화 (출처: 경향DB)
중국 내에서 강경파가 득세하는 배경으로 일본도 꼽을 수 있다. 대일 관계는 중국 지도자들에게 시험대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후야오방 전 총서기가 실각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친일본 성향을 꼽았던 적이 있다. ‘캉르’(抗日·항일)를 소재로 한 TV 드라마는 매일 저녁 전파를 타고 중국인들의 안방을 찾아들고 있다. 중국인들의 반일 감정은 뿌리가 깊고, 지도자들은 일본에 우호적인 것을 꺼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며칠 전 중국 국영 CCTV는 도쿄발 리포트를 통해 일본 학생들에게 난징 대학살과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원인 등을 물었다. 일본 학생들은 잘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선생님에게 물어보면 안되겠느냐 등의 답변을 했다. 이처럼 끊임없이 민족주의적 감정을 고취하는 시도가 이뤄지고 대일 강경외교에 힘을 실어주는 형국이다.
이 같은 행태가 초래할 현상은 매우 우려스럽다. 인접 국가들의 불안감이 군비 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당장 일본은 군사력 증가의 빌미를 갖게 됐고, 다른 나라들도 예외가 아니다. 1972년 중·일 국교 정상화 당시 덩샤오핑은 댜오위다오(센카쿠) 분쟁을 후대의 지혜에 맡기자고 했다. 미국과 중국은 1972년 두 나라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패권을 추구하지 않고 다른 국가의 패권도 반대한다는 상하이 코뮈니케를 체결했다. 현재 과거의 약속들은 휴지 조각이 돼 가고 있다.
‘싱가포르 국부’로 불리는 리콴유 전 총리는 급부상하는 중국이 필연적으로 패권을 추구할 것이며, 결코 부드러운 패권은 아닐 것이라고 전망한 적이 있다. 중국 지도자들은 영원히 패권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종종 강조하지만 신뢰는 최근들어 더욱 떨어지고 있다. 지나친 중국 위협론이 가져올 부작용도 심각하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핵심적 역할을 해줘야 하고, 아시아가 미·중 간 대결장으로 고착화할 수도 있다.
한국을 포함해 많은 아시아 국가들은 경제를 우려해 중국과 관계가 틀어지는 것을 막으면서 중국발 안보위협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방공식별구역으로 중국에 너무 깊이 발을 담갔다는 회의론이 다시 나오지만 돌이킬 수는 없다. 우리 외교가 중국 내 강경파들을 상대로 그들이 오판하지 않도록 설득할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okc@kyunghyang.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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