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자본주의’의 비극
본문 바로가기
경향 국제칼럼

‘슈퍼자본주의’의 비극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5. 22.

대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인은 얼마의 돈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프랑스 사회를 요즘 떠들썩하게 만드는 주제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자동차 회사 르노의 회장 연봉이 문제의 발단이다. 프랑스의 르노와 일본의 닛산 회장을 겸임하는 카를로스 곤 회장은 각 회사에서 700만유로와 800만유로의 연봉을 받는다. 합치면 연봉 1500만유로다. 이는 한화로 200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다. 곤 회장의 수입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40대 기업 CEO 평균 연봉의 3배에 달하지만, 국제적으로는 미국 자동차 업계의 수준과 비슷하다고 한다.

곤 회장의 사례가 프랑스 사회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한 이유는 르노의 주총에서 700만유로의 연봉에 대해 54%가 부정적인 의견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사회는 회장의 연봉안을 밀어붙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회사의 주인은 주주이며, 자본금의 비중에 따라 투표하는 것이 원칙이다. 프랑스 정부가 20%의 지분을 갖고 있는 르노 주총에서 과반수 이상의 주주가 최고경영자의 연봉이 과하다고 판단했지만, CEO와 가까운 인사로 구성된 이사회가 이를 무시한 셈이다. 대의민주제에서 민의를 역행하며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정치인들과 같은 행태가 자본주의에서도 주주를 무시하는 경영진에 의해 반복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 정치와 노동, 학계의 저명한 40인이 CEO의 연봉을 법적 최저임금의 100배 이내로 제한하자고 성명서를 발표하고 나섰다. 프랑스의 최저임금은 1만7500유로(2300만원)이므로 이들의 주장은 아무리 훌륭한 경영인의 연봉도 175만유로(23억원)를 넘어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실제로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일반 노동자와 경영진 간 소득 격차가 21세기처럼 천지차로 벌어진 것은 드문 일이다.

카를로스 곤 르노자동차 대표_연합뉴스

로버트 라이시의 <슈퍼자본주의>에 의하면 미국의 경우 1950년대와 1960년대 기업의 CEO는 전형적 근로자의 30배 정도 소득을 올렸다. 하지만 이 격차는 2001년이 되면 350배로 치솟는다. 평등의식이 더욱 강한 유럽에서도 미국보다는 덜하지만 소수 엘리트와 일반 대중의 소득 격차는 최근 빠르게 증가했다. 지구적 경쟁이 벌어지는 슈퍼자본주의의 시대에 다국적 기업의 경영자는 강력한 구조조정을 지휘할수록 능력을 발휘하는 격이고, 그만큼 자신의 소득을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높일 수 있다.

시민사회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일자 정부도 가세하고 나섰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입법을 통해 최고소득을 제한할 수 있음을 언급했다. 물론 올랑드 대통령은 2012년 임기 초에 고소득자에게 75%의 소득세를 부과하는 정책을 추진했다가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실패한 경험이 있다. 위헌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입법에 쉽게 나서지 못하고 여론을 통해 압력을 가하는 이유다. 프랑스 기업단체인 MEDEF도 앞장서 CEO 연봉에 대한 주총의 의견을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는 규칙을 세웠지만 이는 법적 강제력이 없는 선언적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다.

프랑스의 논쟁을 바라보는 입장은 착잡하고 씁쓸하다. 프랑스 사회에서 도덕적 분노가 강해질수록, 그래서 더 많은 인간적 규제와 진보적 조치를 채택할수록 자본과 기업은 프랑스를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석유분야 첨단 기업 테크닙이 미국 기업과 합병해 새로운 본사를 런던으로 옮기기로 했다. 40인의 성명서는 프랑스 경영진의 임금을 제도적으로 저렴하게 만들면 다국적 기업들이 오히려 파리로 몰려올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이는 억지스럽다. 회사를 파리로 옮기는 것보다는 엘리트들이 런던이나 뉴욕으로 이주하는 것이 훨씬 간단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슈퍼자본주의와 세계화시대의 비극이다. 이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국제적 연대와 협력으로 민주적 세계 규칙을 만드는 지난한 작업뿐이다.


조홍식 | 숭실대 교수·정치학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