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먹고사는 것, 자존감과 굴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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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경제와 세상]먹고사는 것, 자존감과 굴욕감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9. 16.

몇 년 전 일본의 어느 대학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오랫동안 한국 특파원으로 근무했다는 초로의 신사를 만났다. 영호남 방언에 평양방송 아나운서 말투까지 능숙하게 흉내 내는 그는 한국의 이른바 386세대와 얘기하는 것이 무척 즐겁다고 했다. 진보를 열망했던 기억이란 점에서 자기 또래의 이른바 ‘단카이 세대’와 비슷한 정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연금생활자일 그는 우리 일행이 묵는 곳까지 먼 길을 택시로 바래다주고 거기서부터는 전철로 갈아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가 했던 여러 가지 말들 중에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특파원 시절 잘 알고 지내던 한국의 어느 언론인이 청와대 비서관인가 대변인인가로 간 일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참 좋은 사람인데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의아하다는 것이었다. 일본에서라면 메이저 신문의 데스크를 지낸 언론인이 청와대 대변인으로 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나야 일본의 정치 사정에 밝지 못하니 그분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가 언론인으로서의 “자존심”이라는 단어를 나지막이 입에 올리던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자존심을 지킨다는 것, 그 반대는 굴욕을 참는 것이다. 인류학자 김찬호의 <모멸감>이라는 책이 있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나타내는 적절한 키워드 중의 하나일 듯하다. 이솝우화였던가, 20년인가 짧은 삶밖에 주어지지 않은 인간이 신에게 항의하고 또 항의하여 개의 인생 몇 년, 원숭이 인생 몇 년 하는 식으로 결국 굴욕을 참고 살아야 하는 기간을 채워 70년인가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먹고사는 문제가 걸릴 때 초연하게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의 정반대가 꼭 굴욕감이나 모멸감을 참는 것은 아닐 터이다. 누구나 먹고살기 위해 모멸감을 견뎌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모멸감을 맛보지 않고서 시쳇말로 “자존감 만빵”으로 살 수 있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살기 위해 매일 매 순간 모멸감을 견뎌야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최근 굴욕을 참아야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듯한 것이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어느 분야건 기술이 발전하고 경쟁이 심해지면서 승리하는 이보다는 패배하거나 뒤처지는 이가 더 많아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사회 전체적으로 느끼는 굴욕이나 모멸감의 총량은 증가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반대 방향에서 모멸감을 느낄 필요가 없으면서도 동시에 자존심을 잃어가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등학교 한문 교과서에서나 보던 지록위마(指鹿爲馬)니 하는 고사성어가 현실의 언어로 자리 잡는 현상도 그 때문이리라.


감정노동자 근무 실태_경향DB


“먹고산다”는 추상적인 말속에서 각자가 처한 입장에 따라 느끼는 구체적인 이미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누구는 그야말로 하루 세끼 거르지 않고 먹는 것이 먹고사는 것이지만, 다른 누군가는 특급호텔 식당에서 정찬 정도는 먹어줘야 제대로 먹고사는 것일 수도 있다. 누구나 자신이 짊어진 문제를 가장 중요하고 심각하게 느끼는 법이니, 특정 개인만을 탓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사회의 한편에서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이 자존심의 의미를 잊어버리는 대가로 다른 한편에서는 굴욕을 참아내야 겨우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는 그 사회의 구조에 무엇인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굳이 국가는 부르주아 계급의 집행위원회라는 식의 으스스한 명제에 동의하기 때문은 아니지만, 나는 애초부터 국가에 대해서는 그리 큰 기대를 걸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그 흔한 말마따나 국가에도 격이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결코 대형빌딩 전면을 뒤덮는 태극기의 크기 따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비록 립서비스일지언정 “좋은 일자리를 원하면 노조에 가입하라”고 말하는 최고위 정치인이 있는 데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비록 역사로부터 배움을 얻지 못하는 비루한 시대를 산다 하더라도, 끝까지 새겨야 할 역사의 교훈은 어떤 지배계급도 스스로 대오각성하여 기득권을 버린 적은 없다는 것, 오히려 조금이라도 가져갈 이득이 있다면 끝까지 취하려 한다는 것, 그러므로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굴욕을 참으며 버티는 것만으로는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존심을 잊고 “먹고살기” 위한 행위를 온갖 대의명분으로 합리화하는 이들 때문에 더 많은 이들은 “먹고살기” 위해 더 많은 굴욕을 감내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류동민 | 충남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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