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두테르테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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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여적]두테르테의 모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9. 8.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향해 쏟아낸 막말 파장이 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오바마의 정상회담 취소 결정에 두테르테가 유감을 표명하며 꼬리를 내렸지만, 중국 언론들이 사건을 대서특필하면서 미국과 필리핀 간 틈벌리기에 나섰다.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분쟁 중인 필리핀과 미국 사이 갈등을 부추겨 이득을 보려는 속셈이다. 두테르테의 막말이 남중국해 분쟁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라오스를 찾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비엔티안 _ EPA연합뉴스

 

그런데 이번 막말에도 두테르테의 국내 인기는 견고하다. 지난 6월 말 취임 후 두 달 동안 ‘마약과의 유혈 전쟁’에서 2500명의 마약 용의자를 사살했다. 정부의 서슬 퍼런 단속에 60만명 이상의 마약 용의자가 자수했고, 마약 사범 1만2972명을 체포해 7월 범죄가 49% 감소하는 효과를 거뒀다. 정부의 발표라 과장이 있겠지만 시민들이 치안의 개선을 체감하고 있다고 한다.

 

두테르테의 행보는 포퓰리즘적이지만 꽤 전략적이다. 치안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을 선거 캠페인으로 만드는 통찰과 실천력을 보였다. 이번에 오바마를 향해 “나에게 인권 문제를 거론하면 개새끼라고 응수하겠다”고 한 것도 어느 정도는 계산된 발언으로 생각된다. 막말 전 그는 “필리핀은 미국의 식민지가 아니니 내정간섭하지 말라” “오바마가 필리핀 인권을 거론하기 전에 흑인을 마구잡이로 쏘는 미국 경찰관들의 문제를 돌아봐야 한다”고 신랄하게 공세를 편 바 있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펴려고 의도적으로 미국에 맞서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지금까지만 놓고 보면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보다 더 영리하고,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모하마드보다 더 강력하다.

 

하지만 두테르테의 모험은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우선 마약 용의자 중 1000명은 경찰에 의해 사살됐고, 1500명은 자경단 등에 의해 살해됐을 만큼 또 다른 무법천지가 되고 있다. 결과가 좋아도 절차에서 흠결을 남기면 언제든 시민들이 등 돌릴 수 있다. 미국과 중국 간 등거리 외교도 독설 몇 마디로 되는 게 아니다. 벌써 두테르테에 대한 테러 음모가 적발되는 등 권위주의 체제의 낯익은 풍경이 연출되는 것도 수상하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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