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국민 5%만 독립 원하는 나라
본문 바로가기
경향 국제칼럼

[국제칼럼]국민 5%만 독립 원하는 나라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8. 9.
라틴아메리카의 경제위기가 다시 언급되는 가운데 푸에르토리코의 채무불이행 소식이 들려왔다. 푸에르토리코는 2006년 기업 소득에 대한 미국 정부의 세금 우대 조치가 만료된 뒤 경기 침체에 시달려왔다고 한다. 며칠 전 푸에르토리코의 정부 수반은 미국 정부에 푸에르토리코의 파산 신청이 가능하도록 승인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그런 선택은 불가능하다. 파산 신청이 허용되지 않는 까닭은 푸에르토리코가 미국의 영토지만 연방에 속한 주들과 달리 애매한 지위를 유지해온 사정과 관련돼 있다.

카리브해의 섬 푸에르토리코는 사이판을 포함하는 북마리아나제도처럼 미국의 독특한 자치령(commonwealth)일 뿐 연방(United States)의 일원이 아니기에 주민들이 미국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거나 연방 의회에 대표를 파견할 수 없다. 자체의 행정부, 의회, 법원이 있지만 외교, 국방 정책 등에 관한 최종 통제권은 미국 의회와 대통령이 지니고 있다. 사실 푸에르토리코는 15세기 말 유럽인들의 침입 이후 지금까지 독립적으로 주권을 행사해본 적이 없다. 푸에르토리코는 쿠바와 함께 에스파냐의 마지막 아메리카 식민지였으나 1898년 미국-에스파냐 전쟁의 승자인 미국에 병합되었고, 1917년에 푸에르토리코 주민들은 몇 가지 제약을 감수해야 하는 불완전한 미국 시민이 됐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와 관련해 눈에 띄는 최근의 기록은 2012년 11월에 실시된 ‘푸에르토리코의 정치적 지위에 관한 주민투표’의 결과이다. 구속력이 없는 이 투표의 질문은 푸에르토리코가 유지해온 영토적 지위의 지속 여부에 대한 가부(可否)와 어떤 형태의 지위를 선호하는지 등 두 가지였다. 첫 질문에 대해선 현 상태가 바뀌어야 한다는 선택이 54%를 차지했고, 다음 질문에 대해선 대다수(61% 이상)가 미국 연방의 한 주로 편입하길 원한다고 답했다. 33%가 현재와 같은 미국과의 자유로운 연합, 즉 ‘푸에르토리코 자유연합국’의 유지를 선호한 반면, 독립을 바라는 의견은 5%에 그쳤다.




미국은 처음부터 푸에르토리코를 전략상 중요한 자산으로 인식하고 식민 권력을 행사했다. 따라서 미국의 관리 아래 푸에르토리코는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특히 1930~1950년대에 강력한 민족주의적 감정의 표출을 경험했다. 예컨대 푸에르토리코 역사에서 가장 이상주의적인 지도자로 손꼽히는 페드로 알비수 캄포스는 하버드대 출신의 변호사로서 25년 동안 수차례 옥고를 치르면서 식민 통치에 도전하는 저항의 유산을 남겼다. 1964년 12월 유엔 총회에서 쿠바 대표로 연설한 체 게바라는 알비수 캄포스를 “굴복하지 않는 라틴아메리카의 상징”이자 “우리의 아메리카에 영예를 수여한 애국자”로 칭송한 바 있다. 그뿐 아니라 어떤 폭력 행위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반정부적 선동 음모’에 연루된 혐의로 1981년부터 지금까지 35년째 수감 생활을 견디고 있는 72세의 양심수 오스카르 로페스 리베라 역시 독립운동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대다수 푸에르토리코인들과 국제 인권단체가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로페스 리베라의 조속한 석방 요구에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사면으로 화답하는 인권 행보를 이어갈지는 미지수다.

광복절을 앞두고 불경한 상상을 펼쳐본다. 만일 한국인들이 아직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푸에르토리코인들과 같은 내용의 투표를 하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옥에 갇힌 독립투사들의 정신을 따르려는 이들이 5%에 불과한 푸에르토리코의 현실이 우리의 선택과 얼마나 다를까. 광복절은 소비심리의 개선을 고민하거나 현실의 높은 장벽을 확인하고 현실론이 승리를 거두게 하는 날이 아니라 외로운 소수의 독립투사들이 간직했던 꿈과 이상이 무엇이었는지 되묻고 해방의 의미를 다시 기억하는 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니라면 우리에게 탈(脫)식민적 전환은 아득히 먼 과제일 뿐일 테니까.



조현신 | 국민대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 교수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