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멕시코 에너지 개방 ‘약’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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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국제칼럼]멕시코 에너지 개방 ‘약’ 될까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1. 13.

작년 12월 멕시코 의회는 국유석유회사 페멕스(PEMEX)가 75년간 독점해온 에너지 시장을 민간자본에 개방하는 내용의 에너지 개혁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획기적인 법안에 따르면, 멕시코 정부는 외국 기업을 포함한 민간업체에 면허를 발급하고 생산량 배분 계약을 승인할 수 있다. 이로써 미국의 쉐브론텍사코, 엑슨모빌, 영국의 BP아모코, 로열더치셸 같은 굴지의 외국계 석유회사들이 금단의 영역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멕시코 최대 규모의 기업인 페멕스는 연간 매출액 기준 세계 7위의 석유 탐사·생산업체로 1990년대 초 카를로스 살리나스 대통령이 추진한 은행, TV 방송국, 통신 회사 등의 사유화 대공세 속에서 살아남았다. 또 에너지 자원은 북미자유무역협정에서 멕시코가 적용 유예 대상으로 선정한 부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연근해의 원유 고갈(지난 10년간 원유 생산 20% 하락)로 정부 세입의 3분의 1 이상을 책임져온 페멕스의 매출이 감소해 2012년 2분기에는 약 90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페멕스의 기반시설은 평균 25년쯤 되었고 심해 원유와 셰일가스를 개발하거나 정유시설과 송유관을 신설하는 데 필요한 기술력과 자본이 부족한 형편이기에 산유국 멕시코의 에너지원 수입은 늘어났다.

따라서 대다수 멕시코인들은 페멕스의 개혁이 절실하다는 점에 동의한다. 다만 어떤 방향과 성격의 개혁이 필요한지를 둘러싸고 이견이 팽팽하다. 제도혁명당(PRI) 출신의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은 에너지 개혁법안을 의회에 제출하면서 1938년 3월 이래 국가 독점에 묶여 인원을 과다 고용하고 비효율적인 에너지 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페냐 니에토를 비롯한 지배층은 페멕스의 실적 부진이 국유기업의 비효율성과 더불어 노동자들에게 제공하는 고임금과 각종 혜택 탓이라는 관념을 설파하고, 민간자본의 투입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경향DB)

그러나 멕시코인들의 65~75%는 에너지 개혁법안의 요체를 페멕스의 사유화로 인식하고 이에 반발한다. 특히 제3당인 민주혁명당(PRD), 좌파 정치인 안드레스 로페스 오브라도르, 수만명에 이르는 거리의 시위자들은 헌법 조항의 개정까지 고려하는 페멕스의 전면 개편 시도를 국가적 영예에 대한 배신이자 역사에 대한 범죄라고 규탄한다.

1938년 3월 라사로 카르데나스의 석유 국유화 선언으로 탄생한 페멕스는 외세의 간섭에 맞선 경제적 독립과 혁명적 민족주의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엔리케 크라우세가 ‘석유 신학’이라고 부를 정도로 멕시코인들은 페멕스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지녀왔다. 그렇기에 멕시코에서 외국 기업에 에너지 산업을 개방하는 것은 단지 실용적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영혼을 파는 행위로 비칠 만큼 실존적 고민의 문제일지 모른다.

그동안 페멕스의 수익이 정부 세입에 적잖이 포함돼 외채 상환에 쓰였고 정치적 비자금 조성이나 경영진과 노조 지도자들의 비리와 부패로 실종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민간투자 유치만큼이나 페멕스의 과세 부담을 줄여 재투자의 여력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해봄직하다. 더욱이 페냐 니에토와 제도혁명당은 민간투자와 사유화의 효능을 주문 외우듯 절대시하는 신자유주의적 관성에만 의존하지 말고 그런 방향의 정책 전환이 에너지의 소비자인 대중에게 어떤 구체적인 이득을 제공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설명해야 할 것이다.

대표적인 국유기업이 기술력과 자본의 부족으로 음울한 전망에 휩싸인 데는 2000년대에 지속된 국제 유가의 고공행진에도 불구하고 위기를 최소화할 수 있는 조치를 적절히 취하지 않은 신자유주의 정부의 방임과 태업 역시 한몫을 담당하지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1990년대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멕시코의 은행과 통신회사가 민간업체에 매각된 뒤 대출 금리와 전화요금이 올랐듯이 앞으로 페멕스의 민간투자자들이 인원 감축, 국제 유가에 비해 저렴한 멕시코 유가의 인상, 연료 보조금의 축소나 폐지를 얼마나 강력히 요구하게 될지, 그리고 그런 고단한 현실에 적응해야 할 대중을 또 다른 신자유주의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설득하며 그들에게 사유화 비율이 높은 국가의 일원이라는 정체성 외에 실제 어떤 혜택을 줄 수 있을지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박구병 | 아주대 교수·서양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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