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게이츠 회고록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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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국제칼럼]게이츠 회고록의 교훈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1. 20.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의 회고록 출판으로 미국 내는 물론이고 대외적으로도 파문이 일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전쟁 지도력이 미비하고 의지가 박약한 인물로, 조 바이든 부통령은 지난 40여년간 거의 모든 외교안보 이슈에서 잘못된 판단을 했던 인물로 혹평했다. 그 외에도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을 비롯한 행정부 고위관리들은 물론이고, 의회지도자들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비판했다. 게이츠 회고록이 일으키는 파문은 비판 수위가 높은 탓도 있지만, 그의 독특한 경력 탓이기도 하다. 게이츠는 8명의 대통령 아래서 26년간 정보 및 안보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아버지 부시 행정부에서 CIA국장을 했고, 아들 부시와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국방장관을 역임했다.

게이츠의 회고록에 대한 미국 내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지 않다. 당파를 넘어 자기를 믿고 요직에 기용해준 상관에 대해 의리를 저버린 행위로 보는 시각이 많다. 출간 시점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오바마가 현직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중에 가한 비판과 내부 정책결정 과정의 세세한 공개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버드의 커스 선스타인 교수는 게이츠의 회고록 출판은 불명예스러운 행보이며 의리를 저버린 것일 뿐 아니라 정보공개의 대부분이 객관적 사실보다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이 깊게 개입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공헌조차도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 (경향DB)

한국 대통령에 대한 언급도 문제가 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을 반미주의자로 지칭하면서 ‘정신 나간(crazy)’ 인물로 묘사했다. 반면에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호감을 피력했는데, 특히나 그의 친미적인 자세를 높이 평가했다. 이에 대해 물론 한국 내 친미보수주의자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외교현실에 대한 인식 부족이나 반미 이념성이 재확인되었다고 동조하지만, 동맹국 리더를 향한 천박하고 오만한 인식에도 반발하고 있다. 친미만 하면 독재자도 지지해왔던 미국의 전형적인 인식에서 변한 것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렇다면 게이츠의 회고록 파문에서 어떤 함의를 발견해야 하는가?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조차도 이번 사례를 한 개인이 출세를 위해 숨겨왔던 포커페이스를 벗고 본색을 드러낸 행동으로 해석하거나, 아니면 좀 더 확장한다 해도 미국 내 보수우파가 가진 편향된 인식의 표출이라는 평가 정도에 머문다. 이런 평가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닐 수 있지만 거기에 멈출 경우 놓치게 되는 중요한 부분이 있다.


우리가 미국의 오만이나 일방주의 및 군사주의를 레이건, 부시, 체니 같은 특정 인물들이나 또는 기독교우파나 네오콘 등 일부 세력의 책임이라고 쉽게 결론 내리는 경향이 있지만 그야말로 표피적인 해석이다. 앤드루 바세비치의 지적대로 이는 미국 전체의 시스템 문제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즉 오랜 기간 미국의 지배세력이 주도하고 일반국민들이 동조 내지 방임한 결과로서 특정 당파나 인물을 초월하는 역사와 구조의 산물이다.

게이츠라는 인물이 역설적으로 이를 증명해준다. 그는 워싱턴 정가에서도 드물 정도로 당파성을 뛰어넘는 인물로 평가받아왔다. 부시 행정부의 호전적인 군사주의나 해외 개입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인 견해를 표명했었다. 또한 의회나 백악관과의 협의를 중시하는 실용적인 팀 플레이어라는 명성도 얻었다. 그런 인물이 퇴임 후 해외병력 증파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망설임을 비판하고, 미국식 예외주의의 선민의식과 그릇된 군사주의에 동조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낸 것은 단순한 개인의 변심이라기보다는 베트남전쟁과 이라크전쟁의 대실패에도 흔들리지 않는 미국의 리더십 저변에 흐르는 근본적인 이념 체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면 6년 전 오바마라는 인물의 등장이 가져올 미국의 변화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순진하고 어리석었던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김준형 |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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