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일본의 우경화를 극복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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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정동칼럼]일본의 우경화를 극복하는 길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1. 7.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 19세기말의 조선시대에 비해 중국의 국력이 강해진 점과 한반도가 남한과 북한, 둘로 나누어져 있는 점을 제외하면,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필자에게 이런 상황의 해결책을 제시할 능력도 자격도 없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이해가 과연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독자들의 비난을 살 각오로, 감히 몇 가지를 호소하고자 한다.


첫째, 일본정부는 북한 문제와 관련되지 않는 한, 가령 한국정부와 갈등이 있어도 모든 역량을 기울여 대처해야 할 상대로 한국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본 총리 아베의 기습적인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 일본정부는 몇 시간 전에야 도쿄 시내의 한국대사관과 중국대사관에 일방적으로 연락을 하였다고 한다. 한편, 미국에는 오래전부터 신사참배 의견을 타진해 왔다.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왼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출처 :경향DB)


그리고 동아시아의 역학관계를 고려한 미국의 반대의사에도 불구하고 참배를 강행한 탓에 미국이 외교상 이례적인 ‘실망’이라는 강한 표현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신사참배 반응에 대해 일본정부가 촉각을 세우고 있는 대상은 한국이 아니라 중국이다. 중국이 이미 일본의 최대 무역상대국으로서 일본경제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국민들은 우리 정부가 강력히 항의하면 일본정부가 양보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과거에도 지금도 일본정부가 일방적인 손해를 각오하면서 우리에게 양보한 적이 없다. 오히려 한국 대기업들이 일본의 부품 및 기계 없이는 가동이 곤란하다는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취약점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왔다.


둘째, 일본은 한국에 비해 국토면적은 약 5배, 인구는 약 2배, GDP는 약 5배에 달하는 세계 3위의 경제력을 가진 대국이라는 점이다. 한국전쟁의 폐허로부터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가지는 과정에서 국민들은 일본도 곧 추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는데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기초학문의 저변을 보아도 연구인력 및 연구비가 우리보다 훨씬 많으며, 제조업은 부품에서 완성품까지의 전과정이 일본 국내에서만 가능한 생산구조를 갖추고 있다.


게다가 일본의 잠재력이 거대한 점은 첨단과학 분야에서도 엿볼 수 있다. 첨단과학을 모국어로 배울 수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그리고 일본 정도이다. 예를 들면 몇 년 전에 영어가 서툴다는 일본 학자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셋째, 최근 일본에서 인종차별적인 슬로건을 내세우는 극우파들이 조금 불어 났지만, 일본국민의 매우 한정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지어 일본 총리인 아베도 작년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다수당을 획득한 ‘소선거구제’ 덕분이지, 결코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은 것은 아니다. 실질적으로 자민당이 획득한 지지표는 유권자의 겨우 20%에 불과했다. 지난 12월28~29일 이틀에 걸쳐 일본의 교도통신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아베의 신사 참배에 대해 ‘외교관계에 배려를 할 필요가 있었다’(69.8%), ‘배려할 필요가 없다’(25.8%)로 현저한 차이가 났다. 즉, 합리적이고 양식을 가진 일본인이 대다수라는 사실이다.


넷째, 일본인 특히 젊은이들이 한·일관계의 근현대사를 익히 알고 있을 것이라는 오해에 관한 점이다. 일본의 교육과정 특히 고교에서 역사(일본사)는 선택과목이며, 필수과목인 세계사에서도 동아시아의 근현대사는 경시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한·일관계의 역사지식이 적은 일본인을 설득하는 자세는 필요하지만, 이들과의 역사논쟁에서 항복을 받으려는 자세는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기 쉽다.


일본 아베 정권은 앞으로 약 2년반 동안 선거가 없는 점을 이용하여 우경화를 가속화할 것이므로 경색된 한·일관계도 한동안 호전될 전망이 없다. 이러한 때일수록 현 정권은 외교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해 온 구정권들과는 달리 보다 냉정한 이성으로 대처하여야 한다. 즉, 외교문제는 상대성이 작용하는 만큼, 일본의 왜소화가 아니라 그 잠재력을 인정하면서, 그리고 이들의 과거와 현재의 단절성과 지속성을 구분하여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반일과 친일만으로 나누는 양극화가 아니라, ‘지일’로서 일본의 우경화를 극복하려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장정욱 | 일본 마쓰야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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