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후 우리 젊은이들이 전역을 연기하거나 소셜미디어에서 예비군들이 전의를 다진 적이 있다. 이것을 두고 한편에서 젊은이들 사이의 확고한 국가관 정립과 보수화의 정황이라는 진단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결과적으로 북한이 속된 말로 쫄았기에 젊은이들의 행동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들 세계에서 ‘헬조선’이라는 말이 회자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그런 진단은 생뚱맞은 감이 분명 있다.
젊은이들이 보인 반응은 작금에 그들에게 불어닥친 암울한 현실과 궤를 같이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극심한 청년실업으로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를 넘어 이제는 심지어 ‘칠포세대’까지 언급되는 세상이다. 해서 젊은이들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어디다 표출하고는 싶은데 마땅한 곳이 없던 차에 북한에 대해 ‘욱’한 것은 아닐는지…. 말하자면 ‘어디 한번 누구 걸려봐’ 하는 심정이 팽배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북의 도발이 분노 표출의 기화로 작용했을 것이란 이야기다.
이런 추정이 가능한 것은 경기가 좋지 않으면 사회 전반에 분노가 팽배해지고 마침내 사회적 소요로 전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경험적 사실에 기반한다. 그러나 사회 소요가 ‘갑에 대한 을의 분노’의 표출이라면 이런 표출이 일어나기 이전에 ‘을들 사이의 분노’ 표출이 먼저 비등한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그 최대 피해자는 결국 ‘을’ 자신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왜냐하면 국민 대다수는 갑이 아닌 을이기 때문이다. 이번 우리 청년들의 분노는 다행스럽게도 좋은 방향으로 표출되었지만 대부분의 분노는 피와 폭력을 부른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급증하고 있는 도로상의 보복운전 또는 막무가내식 폭력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미국 실업률 추이_경향DB
그런데 이 점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발표하는 실업률은 하락세이지만 국민들이 체감하는 실업률은 “글쎄올시다”이다. 특히 청년실업률은 여전히 고공행진이다. 튼튼한 직장이 씨가 말라가고 있다. 그러니 분노가 들끓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거의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그러니 아주 사소한 시비가 피비린내 나는 폭력과 살인으로까지 쉽게 비화한다. 더군다나 총이 곁에 있는 나라 아닌가.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30여개 도시에서 살인 사건이 전년도에 비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밀워키의 경우 지난해 한 해 동안 총 86건의 살인 사건이 발생한 데 비해 올해는 아직 여름이 채 끝나기 전에 벌써 104건을 기록했다.
작금의 살인과 폭력 사건의 가파른 증가는 세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예측이 어렵다. 과거의 폭력·살인 사건은 갱들 간의 세력다툼이나 강도 사건이 대부분이어서 경찰이 사전에 어떻게 손을 쓸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의 살인과 폭력은 서로 잘 알거나 지근거리에 있는 이들 사이에서 갑자기 벌어지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기에 예측이 어렵다. 둘째, 사소한 말꼬리 싸움이 비극적 결말로 치닫는 게 부지기수다. 즉 분노를 참지 못하고 순식간에 ‘욱’해서 저질러지는 살인 사건이 급증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분노는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이며, 또한 왜 그 분노조절에 실패하고 있는 것일까? 이는 세 번째 특징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은 살인 사건들이 주택압류와 실직 그리고 빈곤이 극심한 지역에서 대부분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밖이 무서워 13세 딸을 집 밖에 안 내보낸다는 밀워키의 주민은 이렇게 말한다. “직장도 없고 기회도 희망도 없는 곳에서 어떻게든 버텨보려 발버둥을 치고 있다. 모두가 힘들다. 이전에 이런 폭력은 없었다. 이와 같은 폭력은 끝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신경이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상태에서 분노조절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그것은 곧 ‘을’들 간의 살인과 폭력으로 치닫고 있는 정황을 정확히 엿볼 수 있는 인터뷰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상황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을’인 미국의 서민들이라는 점이다.
김광기 경북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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