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터키의 보드룸 해변에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이 아일란 쿠르디가 얼굴을 모래 속에 묻고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의 죽음을 담은 사진이 전 세계에 속보로 알려졌고, 그것은 시리아 내전에 따라 발생한 난민의 상황을 외면해왔던 사람들의 양심을 깨웠다.
유럽 난민 문제의 직접적 원인은 “실패한 국가”들의 국내 정치 갈등과 내전에 있다. 시리아 내전은 2011년 ‘아랍의 봄’ 여파로 발발하였고, 그로 인해 수많은 난민이 생겨났다. 만약 유럽 국가들이 시리아 내전에 대한 진지한 해법을 모색하고 충분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였다면, 상황이 지금처럼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그중 몇몇 나라는 시리아 내전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 유럽 국가들이 시리아 내전을 ‘강 건너 불’이라고 방관하거나, 확전을 유도한 것이 현재의 유럽 난민 위기를 초래한 근본 원인이다.
이 사건 이전에도 수많은 희생자를 낸 비극이 잇따랐다. 그에 따라 유럽에서는 난민 문제를 공통 과제로 설정하고 근본적 해결책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유럽연합(EU) 회원국별 난민쿼터제를 그 방안으로 제시했다. “유럽이 공동으로 난민 대응 시스템을 마련하고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1월 발생한 샤를리 에브도 테러의 여파로 국내 사정이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난민쿼터제를 적극 수용하였다. 스웨덴도 그러한 움직임에 적극 동참하였다.
한국에 거주하는 시리아 난민들이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세이브 시리아 세이브 레퓨지스' 캠페인을 열고 실태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_경향DB
아일란 사건이 발생한 직후인 지난 9일,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유럽의회 국정연설에서 난민 16만명을 회원국별로 분산 수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독일, 스웨덴,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으나, 영국은 EU 회원국별 난민쿼터제를 거부하면서 “향후 5년 동안 시리아 난민 2만명을 수용하겠다”는 독자적 계획을 밝혔다. 한편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과 덴마크는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서유럽 국가 중에서는 유일하게 덴마크가 올해 덴마크국민당 정권이 집권한 후 노골적인 난민 억제 정책을 펴고 있다. 지난 7일 덴마크 정부는 시리아 난민 110만명이 머무르고 있는 레바논의 주요 일간지에 ‘신이민정책’ 광고를 실었다. 광고는 난민들에 대한 사회보장 혜택을 50%까지 줄였다고 밝혔고, “일시적 체류허가를 얻은 난민이라도 가족을 데려올 수는 없다”고 명시했다. 난민 지위를 얻으려면 “덴마크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을 알리면서, “난민 신청을 거부당한 사람은 즉시 덴마크를 떠나야 한다”고 밝힘으로써 난민의 자국 유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 했다.
이러한 덴마크 정부의 “반이민정책”에 대해 시민들이 저항하기 시작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3만명이 난민을 위한 행진에 나섰다. 시위대는 “안전한 삶을 위해 유럽행을 택한 난민 수천명이 죽어가는 것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정치인과 언론이 난민은 위협적이고 짐이 될 것이라고 낙인찍는 것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구호를 외쳤다.
난민 문제를 둘러싸고 EU가 분열과 갈등에 휩싸여 있다. 난민을 대하는 유럽인들의 태도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동유럽에서는 자국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난민 수용을 거부하고 있고, 덴마크에서는 “반이민 정서”를 근거로 “국경 폐쇄”를 유도하고 있다. 한 난민 아이의 죽음이 인류사회에 던져준 충격 앞에서도 몇몇 나라 정부는 국익을 앞세워 난민 유입 차단만 고수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는 난민 위기를 해결할 수 없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말이다.
한국 정부는 유럽 난민 위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아일란 사건으로 그것은 이제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인류사회의 문제로 확산했다. 유럽 내부의 분열을 아쉬워하는 것만큼, 한국 사회가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게 필수다. 남미의 베네수엘라가 시리아 난민 2만명을 수용하겠다고 발표했고 브라질, 칠레도 긍정적 방향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렇지 않으면, ‘강 건너 불’ 보듯 방관하는 점에서 우리도 유럽 몇몇 나라와 같은 과오를 저지른 것이 된다.
설동훈 | 전북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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