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통 큰 정치가 화제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진보는 물론 보수 언론까지 나서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질타하는 와중에 맞물린 화두인 것이 분명하다. 세월호 사고와 성완종 게이트 때 진보 언론은 박 대통령의 소위 유체이탈 화법으로 대변되는 책임 회피와 소통 부재의 정치를 비난했다. 그러던 것이 메르스 사태와 유승민 찍어내기 과정을 거치면서 그동안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일관하던 보수 언론에까지도 그 불이 옮겨붙었다. 박 대통령의 통치 방식에 ‘벽창호정치’와 ‘협량정치’라는 꼬리표가 붙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오바마다. 박 대통령에 견주어 볼 때 오바마는 대통합의 ‘대인정치’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 6월 말 백인 우월주의자의 증오범죄로 희생된 흑인 목사의 장례식장에서 오바마가 보여준 극적인 이벤트로 정점에 달했다. 오바마는 이런 참사를 백인의 탓으로 돌려 비난하며 증오를 부추기보다는 ‘어메이징 그레이스(놀라운 은혜)’란 복음성가를 불러 인종 간 화해와 용서를 이끌어 내려 했다는 것이다. “배신의 정치” 운운하며 편 가르기와 증오의 정치를 일삼는 박 대통령의 제왕적 통치 방식에 염증을 느낀 우리나라의 언론은 진보와 보수 가릴 것 없이 오바마를 극적으로 대비시켰다.
그러나 필자에겐 이런 우리나라의 언론이 생뚱맞기만 하다. 왜냐하면 단지 오바마는 추모의 취지에서 격의 없이 노래를 부르는 소탈함만을 보여줬을 뿐, 우리나라 언론이 임의로 각색하듯 통합과 ‘대인정치’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2008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선택된 카드다. 그러나 오바마는 이런 국민들의 희망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지면상 몇 가지만 언급하겠다. 2008년 선거 직후 그의 첫 일정은 하와이에서의 골프였다. 그 후에도 난국을 수습하는 국정 최고 통수권자의 모습보다는 골프광의 모습이 미국 국민들에게는 더 낯익다. 역사상 최대 가뭄으로 집 뜰 잔디마저 걷어내는 캘리포니아에서 어김없이 골프광으로 등장한 오바마를 두고 최근 비난이 거세다. 물 먹는 하마로 알려진 골프장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판에, 그것도 타들어가는 농부들의 속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가롭게 골프라니….
버락 오바마 미대통령_AP연햡뉴스
그래도 이것은 다음에 비하면 약과다. 말로는 금융위기가 이른바 대마불사인 대형금융회사 때문에 일어났다며 처벌과 규제를 약속했지만, 그것은 단지 표를 얻기 위한 교언영색에서 비롯된 호언장담이었을 뿐 애초부터 마음에 없었고 실행하기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오바마는 그 대형금융회사로부터 천문학적인 선거자금을 받아 대통령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선라이트재단은 대통령 초선 직전 오바마가 과거 20년래 월가로부터 가장 많은 선거자금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것뿐이랴. 뉴욕타임스는 선거기부금을 많이 낸 사람들이 백악관을 제집 드나들듯 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또 이런 고액기부자들 중엔 해외 대사 자리를 꿰찬 이들도 많은데 이것은 누가 봐도 끼리끼리 돈 대주고 뒷배를 봐주는 ‘패거리정치’와 ‘금권정치’의 전형이라고 꼬집는 텔레그래프도 있다.
오바마 ‘패거리정치’의 대표적 사례는 뭐니뭐니해도 얼마 전 시카고 시장에 재선된 이매뉴얼이다.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던 그는 시카고 시장 출마 때 최소 거주기한 미비로 출마자격이 박탈됐음에도 오바마의 직간접적 지원으로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어져 출마했다. 가히 ‘오바마의 남자’, 즉 요샛말로 ‘문고리 권력’의 위세를 보여준 것이다. 이런 판에 우리나라 언론이 오바마를 대통합의 아이콘으로 등극시키는 것은 코미디요, 무지의 소치다. 우리나라 언론이, 보수건 진보건 가릴 것 없이, 우리 것이 탐탁지 않으면 뭐든 비교의 대상을 미국에서 찾으려 하는 것이 문제다. 미국 정치는 그렇게 성스럽지도, 깔끔하지도 않다. 소설도 소설 나름. 이런 소설은 표절보다 더 나쁘다. 반드시 근절돼야만 할 소설이다.
김광기 | 경북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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