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중순, 다롄(大連)을 거쳐 압록강 하구 단둥(丹東)에서 두만강 하구 팡촨(防川)으로 연결되는 북·중 국경지대를 답사했다. 7박8일 동안 1300㎞가 넘는 중국 국경에서 바라본 북한의 산야는 궁벽했다. 사람, 배, 트럭 등 모든 것들이 마치 멈춰 있는 듯했다. 평일 대낮임에도 적막했다. 일행 중 누군가가 3년 전에 비해 전반적으로 형편이 많이 나아져 보인다고 설명했지만 수긍하기 어려웠다. 철조망 너머에는 여전히 가난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북한 들녘의 옥수수마저 중국 것에 비해 굵기도 작고, 키도 낮아 보였다. 비료 부족 등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때문이었다. 러닝셔츠 바람으로 강둑에 나와 앉아 있는 중년 남자의 모습은 그의 야윈 체구만큼이나 빈궁했다. 이 모든 것이 오랜 가난 때문이었다.
강둑 아래로는 초등학생들로 보이는 여러 무리의 아이들이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건너편 여행객들의 등장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물속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순간 천진난만한 소년들의 꿈이 궁금했다.
나무가 없는 산은 익숙지 않았다. 군데군데 형성된 나무의 군집은 초록색 벌판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대형 브로콜리 같았다. 주변에 민가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잘 정돈된 뙈기밭의 주인은 가파른 산을 타고 오가는 듯했다. 그래야만 연명할 수 있었다.
듬성듬성 설치된 북한 초소 역시 아주 초라했다. 페인트가 벗겨지고, 창문의 유리도 깨친 채 방치되어 있었다. 초소는 김정은 체제보다도 먼저 무너질 듯 보였다. 초소 내 병사들의 모습은 끝내 보질 못했다. 그렇게 국경의 여름은 가난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다행히 궁핍 속에서도 북·중 간 교류는 조금씩 꿈틀거리는 듯했다. 단둥에서 신의주로 이어지는 압록강 철교 위로 레미콘 차량들이 큰 항아리같이 생긴 통을 돌리며 줄지어 건너가고 있었다. 단둥과 가까운 북측 지역 어디에선가 공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중국 단동의 북 . 중 국경_경향DB
답사 중 중국과 나진·선봉 경제특구를 오가며 무역을 하는 외국인을 만났다. 그는 특구 내 경제가 이전보다 활성화되었다고 했다. 특구에는 중국인 이외에 소수의 러시아인, 일본인, 재미교포도 사업차 거주하고 있다고 귀띔해주었다. 다음날 나진·선봉으로 이어지는 훈춘 국경 관문 주변에서 통관을 기다리는 컨테이너를 실은 화물차 서너 대를 목격했다.
남북한 군사충돌 이야기는 두만강변을 지나면서 들었다. 종편을 보면 마치 금방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 같다는 문자들이 왔지만 ‘걱정하지 말라’는 답신만 했다. 북·중 국경 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미확인 보도도 있었지만, 답사 기간 내내 국경은 압록강을 따라 유유히 내려가는 긴 뗏목만큼이나 평온했다.
남북 군사적 긴장은 답사가 끝나고서야 봉인됐다. 이번 합의는 그래서 ‘취급 주의’가 찍힌 상자와 같다.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언제라도 깨질 수 있다. 남북한이 거짓말처럼 약속한 숱한 합의문이 그랬다. 남북 지도자의 현명한 판단이 또다시 역사의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이병철 평화협력원 핵비확산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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