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7년 만의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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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경향의 눈]7년 만의 외출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8. 31.

본디 자리로 돌아오는 데 7년이 넘게 걸렸다. ‘8·25합의’로 본격 재개된 남북대화 얘기다. 박근혜 정부는 ‘우리는 다르다’며 과거 정권과의 차별성을 강조한다.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도 “북한은 불안과 위기를 조성하고 양보를 받아내왔다. 우리 정부에서는 그것이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실인가. ‘그렇지 않다’가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북한은 지뢰도발과 포격으로 불안과 위기를 조성했고,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이라는 ‘양보’를 얻었다. 물론 북한의 도발에 대한 정부의 단호한 대응은 과거와 다르다.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사건 때 물러터진 이명박 정권의 대응과 비교된다. 하지만 전쟁 발발 직전의 상황에 가서야 합의를 본 남북관계를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다. 김 실장이 "이번 합의가 군인 2명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진 것을 무겁게 생각한다"고 말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정부는 이번 합의를 자랑하기에 앞서 성찰하는 자세로 바라보아야 한다. 북한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사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담론만 무성했지 실제로는 아무것도 안 하기, 그 자체였다. 그 런데 남의 자식처럼 홀대하던 대북 분야에서 생각지도 않게 대박이 났다. 국가 자원을 동원하고 온갖 부양책을 써도 백약이 무효인 경제살리기 정책과 반대 현상을 보인 것이다. 이번 남북대화 재개를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의 개가로 볼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남북대화 성사 과정이나 정권의 공과 문제는 본질이 아니다. 안정적인 남북관계 발전의 계기가 마련된 현실을 소중히 여기고 집중해야 한다.

정부가 차별성을 강조한 것은 기본적으로 남북대화에 부정적인 보수층을 의식한 행동이다. 하지만 남북교류의 성과를 독점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대북정책을 특정 정권이나 진영이 독점하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순수한 대북정책으로 기능하기 어려워진다. 당장 상대 진영의 반대와 비판에 직면하고, 나아가 이념투쟁과 국론분열의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다행히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번에 초당적 대처를 했다. 대북 규탄 결의문까지 채택해 북한과 대치 중인 정부에 힘을 실어 주었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야당에 사례를 하는 것이 좋았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야당에 초당적 협조를 요청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야당은 정부와 달리 남북대화 경    험이 풍부한 인력과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포천 승진훈련장에서 전역 연기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_경향DB


이 번에 사회적 관심을 모은 20대의 안보관도 세밀하게 생각해 볼 대목이다. 물론 언제 전쟁이 터질지도 모르는데 전방 사단의 고참 병사들이 잇따라 전역 연기를 선언한 것은 평가할 만한 일이다. 정부 설문조사에서도 전쟁이 나면 참전하겠다고 응답한 20대가 90%를 넘었다고 한다. 20대는 책임감이 부족하고 국가관이 투철하지 못하다는 사회 통념을 깬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자칫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남북 대결 시대에는 큰 힘이 되겠지만 대화 국면에서는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30세대는 대체로 남북한을 정상적인 국가 간 관계로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포의 시선으로 북한을 대하는 경향성이 약하다 보니 남북 간에도 엄격한 상호주의가 적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비대칭, 비등가성, 비동시성 주고받기가 필요한 남북관계 특성을 감안하면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남 북대화의 창은 열렸지만 남북이 얻고자 하는 것을 보면 부조화의 총합처럼 보인다. 북한은 대화를 통해 고립된 국제사회로부터의 출구를 모색하고 안보 우려를 해소하려 한다. 북한 매체들은 구체적으로 체제 인정과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단을 거론한다.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해도 남북대화를 끊어서는 안된다고 보는 보도까지 나왔다. 그런데 이는 하나같이 남한이 수용하기 어려울뿐더러, 남한 정부의 노력만으로 풀 수 없는 문제들이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처럼 대통령이 지시하면 그것으로 그만인 사안들이 아니다. 다만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남북관계 개선의지가 강하다는 점은 희망적인 대목이다. 지난 7년여간의 남북 대결시대는 대화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증명했다. 군사적 대결이 잇따랐고, 수백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신뢰가 바닥나고 적대감이 쌓였다. 안정된 남북관계는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도 기여할 것이다. 두 개의 한국은 남북관계 개선 카드로 국제사회 발언권과 영향력을 키우고, 이것이 다시 남북관계 발전에 기여하는 선순환을 꾀해야 한다. 동북아에 영향을 주는 독립변수가 될 것인지, 아니면 종전대로 동북아의 영향을 받는 종속변수가 될 것인지가 남북의 선택에 달린 셈이다.

이 와는 별개로 정부는 남북관계 발전의 대의를 살리기 위해 대북정책의 기조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 북한을 먼저 신뢰한다는 ‘도덕적 신뢰’를 채택하는 것이다. 북한이 먼저 신뢰를 보여줘야 한다는 기존의 ‘전략적 신뢰’로는 양보와 인내가 관건인 남북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없기 때문이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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