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5 남북고위급 합의’는 미진한 부분도 있지만 남북간 파국을 막고 대화의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동안 대립과 반목의 관계가 지속되면서 대화와 경제협력은 단절되고 군비경쟁은 격화되었다. 이로 인해 생명들이 희생되고 경제적 손실도 컸을 뿐만 아니라 경제발전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제 이번 합의를 계기로 분단 70년을 맞은 남북관계에 새장을 열어야 한다. 분단의 고통을 치유하고 분단 비용을 없애는 확실한 방법은 통일이지만, 지금 통일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렇다면 현재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한반도 평화와 공동 발전, 나아가 민족통일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실효성 있는 방안이 무엇일까. 한반도 경제공동체가 해법이다. 물론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남북 단일경제와 같은 경제통합을 지향하기는 어렵다. 북한의 주권이나 체제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최대한 보장하는 수준의 경제공동체만 실현하더라도 한반도의 상황은 획기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우선 한반도가 전쟁위협에서 해방됨으로써 국민들이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고 남북 모두 획기적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 이산가족들 왕래가 쉬워지고 냉전체제가 해소돼 북핵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국가위험도를 크게 감소시켜 국가신용도 상승, 해외자본 차입여건 개선, 외국인투자 활성화가 가능하다. 국내적으로도 경제의 불확실 요인이 축소돼 투자심리가 개선될 것이다.
둘째, 한국경제의 애로 요인인 고임금, 공장용지와 자원부족, 저출산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다. 한국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싼 노동력과 지하자원 등 남과 북이 비교우위에 있는 생산요소들을 자유롭게 활용하면 남북 상생의 성공모델을 창출할 수 있다. 이를 활용해 북한의 도로·철도·항만 등 사회적 자본을 확충하면 통일비용을 크게 줄이는 효과가 있다.
경기 파주시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30일 관광객들이 망원경으로 북측 지역을 살펴보고 있다. 평화누리공원 등 파주 안보관광지는 북한의 포격 도발로 접근이 제한됐다가 8·25 남북 고위급접촉 합의 이후 재개됐다._경향DB
셋째,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고 대륙 진출의 꿈을 앞당겨 남북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확보된다. 한반도 경제인구가 8000만명에 근접하고, 한반도 경제시장이 중국·러시아 등 유라시아대륙으로 확장되어 국민소득과 인구가 각각 4만달러와 8000만명이 넘는 ‘40-80클럽’ 가입의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다. 한반도종단철도를 대륙횡단철도와 연결하면 물류비가 크게 절감된다. 부산에서 오스트리아 빈까지 배로 화물을 수송하면 28일이 걸리지만 철도로는 5일밖에 걸리지 않는다. 상품의 수송 비용과 시간을 크게 절감함으로써 남북에 큰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다.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의 풍부한 자원을 활용할 수 있고 우리 기업들의 수출 촉진과 이들 지역의 개발사업에도 진출할 수 있다. 그야말로 한반도 경제공동체를 기반으로 유라시아 대륙경제와 연결하는 북방 경제협력이 이뤄져 지속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평화까지 얻는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경제공동체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북한 당국에 한반도 경제공동체는 북한의 체제를 건드리지 않고 북한경제를 고속 성장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먼저 우리 정부가 인내심을 갖고 끈질긴 대화를 통해 남북 경협을 확대해나가고 5·24조치를 해제하는 포용적 조치를 단행해 진정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북한은 지금 세계 최빈국으로서 최악의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고 주변국 상황 역시 어렵기 때문에 이런 신뢰만 쌓이면 경제공동체 실현도 가능한 일이다.
우리 내부에도 북한의 못된 버릇을 고쳐야 한다느니 5·24조치 해제는 절대 안된다는 주장들이 많다. 그러나 강대강의 맞대응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공멸만 가져올 뿐이다. 민족 간에는 백전백승의 싸워 이기는 전략이 아닌 싸우지 않고 이기는 부전이승(不戰而勝) 전략으로 가야 한다. 남북관계는 목전의 이익보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큰 이익을 위해 나무보다는 숲을 보고 가야 해결책이 보인다. 남북 당국이 대화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반도 경제공동체를 실현하는 것이 ‘좋은 통일’로 가는 지름길임을 명심해 주었으면 한다.
이용섭|전 국회의원 전 건설교통부·행정자치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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