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북한이 내민 손을 한·미가 잡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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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기고]북한이 내민 손을 한·미가 잡는다면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10. 9.

10월 위기설이 지나가고 있다. 위기설은 두 가지가 맞물려 증폭되었다. 하나는 북한이 위성 발사와 핵실험을 ‘시사’한 것이었다. 또 하나는 북한이 10월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즈음해 장거리로켓 발사를 강행할 것이라는 한국 등 외부 세계의 ‘해석’이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북한은 로켓 발사 일정을 밝힌 적이 없다. 오히려 특정일에 맞추는 것은 기술적으로도 어렵고 불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어쨌든 북한의 로켓 발사가 임박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고 또 환영할 만하다.

기실 북한이 기술적 준비가 완료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로켓 발사를 시사한 것은 관련국들에 ‘러브콜’을 보낸 것이었다. 8·25 판문점 합의 이후 한·중 정상회담, 미·중 정상회담, 유엔총회가 연이어 예정되어 있었고, 10월 중순에는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북한은 이러한 외교 일정에 주목하고 자신의 아젠다를 던지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로켓 발사와 핵실험을 시사해 한국·미국·중국의 우려를 자극하는 방식을 택했다.

7일 나온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이러한 의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북한은 담화에서 “미국이 평화협정 체결과 관련한 우리의 제안을 심중히 연구하고 긍정적으로 응해 나오기를 기대한다”면서, 이렇게 되면 “미국의 안보상 우려점들도 해소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핵심적인 우려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인 만큼, 평화협상 시 이들 사안도 의제에 포함될 수 있다는 점을 내비친 것이다. 정리하자면 북한의 위성 발사 암시는 평화협정을 의제화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었다. 그리고 이건 한반도 문제를 풀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이자 너무나도 좋은 기회이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한 회담을 시작하면, 그 자체로도 한반도 정세 안정화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의 해결 실마리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10월16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은 이러한 대타협을 개시할 수 있는 좋은 외교적 공간이다.


북한 서부전선타격부대들의 전술로켓 발사훈련_경향DB


지금 한반도는 중대 갈림길에 들어서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시나리오는 한·미가 평화협상을 거부하고 북한이 위성 발사를 위한 기술적 준비를 완료하는 상황이 만나는 것이다. 최악의, 그러나 한·미 양국이 현 정책을 고수하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이다.

반면 북한이 내민 손을 한국과 미국이 잡는다면 그 주도권은 한·미가 쥘 수 있다. 평화협정 협상을 개시하면서 그 조건으로 북한으로부터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는 물론이고 위성 발사의 유예 약속도 받아내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흔히 평화협상을 수용하면 북한의 협박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간주되곤 한다. 그러나 평화협상만으로 북한이 실질적으로 얻을 것은 없다. 오히려 한·미와 중국이 북핵과 미사일을 관리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을 가질 수 있다. 더구나 평화협상은 9·19 공동성명의 핵심적인 합의 사항이다. 한·미는 10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이 협상이 열리지 않고 있는 현실이 북핵 악화를 초래한 핵심적인 사유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주창한다.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한반도를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분류한다. 이 두 가지를 관통하는 것이 바로 한반도 정전체제이다. 전쟁도 평화도 아닌 정전 상태가 60년 넘게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야말로 비정상의 극치이자 한반도를 지구상에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10월16일 만나게 될 한·미 두 정상이 이를 직시하면서 평화협상의 문을 활짝 열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그 속에 북핵 해법도 담겨 있다.


정욱식 | 평화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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