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기간에 필자는 옌볜과학기술대학에서 주최한 세미나에 다녀왔다. 이번 세미나는 개인적으로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한국의 발전전략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동행한 아시아포럼 멤버들과 같이 현지 명망가 대담과 다양한 방문기회를 통해 옌볜조선족자치주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했다.
고구려 유민들이 발해를 건국한 것과 마찬가지로 옌볜조선족자치주는 조선의 유민들이 망국의 한을 피땀으로 삭이며 조성한 ‘마음속의 나라’이다. 조선왕조 500년을 통해 한반도 지키기에 급급했던 우리 민족에게 유민들의 간도 진출은 새로운 희망을 쏜 일대 사건이었다. 고구려의 부활을 추구한 고려의 꿈이 정도전의 조기 퇴출로 사실상 종결되었지만 화초같이 유약한 나라가 아니라 잡초처럼 강건한 유민들이 불씨를 되살렸기 때문이다.
초창기 간도의 건설은 이상설과 김좌진으로 대표되는 민족주의 진영이 주도하였지만 식민통치가 심화된 1930년대 이후 사회주의 계열의 영향력이 강화되었다. 이러한 추세는 1920년 청산리 전투와 1937년 보천보 전투에서 시작해 광복군과 조선의용군으로 이어지는 시차와 계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간도 이주민들은 1930년대 중반 이후 중일전쟁, 국공내전, 한국전쟁 등으로 이어진 참화 속에서 어렵게 개척한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10만명에 육박하는 인원이 피를 흘려야 했다. 이에 자치주 출범을 선도한 주덕해는 회고록을 통해 옌볜을 위협했던 일제, 군벌, 미제를 싸잡아 비난했다. 나아가 경위야 어찌되었건 한때 전쟁 상대였던 한국에 대한 감정의 잔재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취업비자 발급이 용이해지고 한국발 송금액이 연간 10억달러를 넘어서자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
하지만 한국 본토는 물론 한국 기업의 영향권인 중국 대도시로의 조선족 엑소더스는 고귀한 피땀으로 만들어진 옌볜조선족자치주의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자치주 내 시와 현 중에서 사정이 나은 옌지시와 룽징시의 조선족 인구비율이 절반을 위협받고 있고 실거주 인구는 절반에 절반을 향해 가고 있다.
옌볜조선족자치주 룽징중학교에 윤동주 시인의 재학시절 교실 모습을 재현한 ‘윤동주 교실' _ 연합뉴스
그렇다면 옌볜조선족자치주가 우리 민족이 열망하는 ‘희망과 도전의 나라’로 계속 남아있도록 유도하는 한국 정부의 지원자적 역할은 무엇인가? 물론 보다 가까이, 더욱 심각한 북한 문제의 대책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옌볜 공동체의 활성화에 초점이 부여된 정책목표에 대한 적극적 관심과 전폭적 지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옌볜의 위기’와 ‘북한의 절망’을 동시에 해결하는 정책 혼합의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진핑 주석의 방문을 계기로 재조명된 두만강 경제벨트 구상은 개성공단과 제주특별자치도의 성공 노하우를 적절히 조합할 경우 우리 민족의 염원인 고토 수복의 과업을 경제적 측면에서 구현하는 전진기지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옌볜과 북한의 접경인 두만강 일원에 다국적 이해관계를 결합한 다목적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최북단 특별자치도에 부합하는 정책수단을 창안한다면 북한의 개방과 옌볜의 정주를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두만강 경제벨트 성공의 당위성은 통일대박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일에 부가해 압록강 상류 장백현과 혜산시가 수십m에 불과한 강폭을 사이에 두고 연출한 ‘갈라진 도시 노갈레스’의 비극을 치유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더불어 강 건너 북한에 비해 사정이 나은 옌볜이지만 경제적 이유로 성장기 자녀들과 생이별하는 ‘가정파괴의 비극’을 간접적 원인 제공자인 우리가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배려가 내재되어 있다.
김정렬 | 대구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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