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일본의 ‘탈원전’ 실현, 문제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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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기고]일본의 ‘탈원전’ 실현, 문제는 정치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3. 26.

지난 3월 11일로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4년이 지났습니다. 후쿠시마원전 사고는 현재도 진행 중이며 언제 끝날지 전망은 전혀 서 있지 않습니다. 지진 후에 건강이 안 좋아져 사망한 사람이나 피난생활을 고통스러워하다가 자살한 사람 등 ‘지진재해 관련사’로 인정된 사람이 3194명에 달하는데, 이 가운데 1793명이 원전 사고의 영향을 크게 받은 후쿠시마현에서 나왔습니다.

고향을 떠나 피난한 22만9000명 중 11만9000명이 후쿠시마 주민입니다. 아울러 후쿠시마현이나 그 주변에서는 일자리 문제나 생활 불안 때문에 피난하고 싶지만 머물러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안전해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위험해도 머무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정치의 빈곤 때문입니다. 일본에서는 원전 재가동에 반대하는 의견을 가진 이들이 과반수를 차지하는데, 반대의 커다란 이유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정부나 전력회사가 제대로 도와주지 않는다는 현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는 방사능 오염수를 저장한 탱크가 부지를 가득 메우고 있어 빈터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부지에서 오염수 유출이 지금도 멈추지 않고 바닷물과 해산물을 오염시키고 있어 근해에서 고기잡이는 여전히 금지된 상태입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쌀 등 농산물에 대한 방사성 세슘의 이행이 비교적 적어 표고버섯 등을 제외하면 오염 수준이 낮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오염된 논밭에서 일하는 농민들의 외부피폭을 경시할 수는 없으니 오염지역에서 농업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원전을 추진하려는 사람들은 방사성 피폭의 영향을 작게 보이려 기를 쓰고 있지만 귀환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후쿠시마현 어린이들의 갑상샘 이상이 다수 발견되고 있는 데도 원전사고와의 인과관계는 명확하지 않다고 말을 합니다. 불안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자민당 아베 총리는 “원전 의존은 가능한 한 줄인다”고 말하면서도(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선거에서 지지를 얻지 못함) 실제로는 “원자력규제위원회가 안전성을 인정한 원전은 재가동을 추진한다”(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전력업계나 재계의 지지를 얻지 못함)며 원전 추진 입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 입으로 두말하는 것임을 국민들은 알아채고 있습니다.

3·11 원전사고를 겪으며 일본은 새로운 원전 규제기준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규제기준은 이전보다 진전된 내용을 담고 있기는 해도 원전의 안전성을 보증한 것은 아닙니다. 규제위원회 스스로 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원자력규제위원회는 “규제기준에 부합하고 있는지를 심사할 뿐 안전하다고는 말씀드리지 않는다”고 ‘명언’하였습니다.

일본의 신규제기준은 중대사고 대책을 충실히 만들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선전이 이뤄지고 있지만, 구미에서 이미 20년 전에 실시돼 있던 대책을 따라잡은 것에 불과합니다. 구미의 새로운 원전에서 채용되고 있는 코어 캐처(용융된 노심의 반응을 막는 장치)나 이중 격납용기(항공기 돌입 대책)는 설치돼 있지 않습니다. 지진대책도 아직 불충분합니다.

1970년대에 건설된 노후화 원전에는 폐로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동해(일본해)에 면한 와카사만에 있는 3기 원전의 폐로가 17일에 발표됐습니다. 규슈에 있는 겐카이 1호기의 폐로도 18일에 발표됩니다. 이들 원전은 압력용기가 중성자를 쬐어 취약해져 있습니다. 그 취약성을 보여주는 온도(취성천이 온도)가 겐카이 1호기에서는 98도에 달하고 있습니다. 폐로는 당연한 일입니다. 다른 한편, 와카사만에 있는 다카하마 1호기는 취성천이 온도가 99도에 달해있는데도 40년을 초과한 상태에서 운전계속을 신청해 놨습니다. 이렇듯 위험한 원전은 당장 폐로해야 합니다. 참고로, 부산 부근에 있는 고리 1호기의 취성천이 온도는 107도에 달하고 있으며 역시 당장 폐로해야 합니다.

원전 사고로 어린이들이 단 한 번도 즐기지 못한 체르노빌 인근 놀이공원 (출처 : 경향DB)


현재 일본에서는 모든 원전이 정지돼 있지만 정전이나 전력 부족은 발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전력회사는 20기의 원전 재가동을 신청해 놓았고 정부나 재계가 이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민의와의 간극은 명백합니다. 두 번 다시 중대 사고를 일으켜서는 안되며 탈원전으로 향하는 정치를 실현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이노 히로미쓰 | 도쿄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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