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 탈북자 ‘정치범 수용소 탈출’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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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기고]한 탈북자 ‘정치범 수용소 탈출’의 진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1. 19.

1년 전 고려대 북한학과 대학원생들이 주최한 작은 모임에 탈북자 신동혁씨가 강사로 왔다. 필자도 참석했다. 이름은 익히 들었지만 그날 신씨를 처음 만났다. 북한 사투리가 남아있는 수줍음 많은 사람이었다. 신씨는 정치범수용소에서 겪은 비참함을 거침없이 토해냈다. 김정은과 비슷한 연령대라는 신씨의 증언이 무엇보다 생생하게 다가왔다. 신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옆에 놓여 있던 아마존 전자책 킨들에서 신씨의 자서전 <14호 수용소 탈출>(Escape from Camp 14)을 내려받았다. 자세히 알고 싶었다.

<14호 수용소 탈출>은 북한 인권에 대해 분석하고 설명하기보다는 북한의 잔혹성이 어떤지 알고 싶을 때, 그것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지나 이상한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14호 수용소 탈출>에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다는 것이었다. 출처도 모호해 신씨를 시기하는 사람들의 헛소문으로 치부했다. 이후 간간이 언론을 통해 유엔인권위원회, 미 의회 청문회 등에서의 신씨 활약상이 보도됐다. 어느새 북한 인권 참혹상을 알리는 국제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해 나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신씨가 18일 자서전의 일부 오류를 시인하고 북한 인권운동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신씨의 자서전 집필자인 블레인 하든의 말을 인용해 “신씨가 혼란스러운 상황을 만든 데 대해 죄송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탈출을 계획하던 어머니와 형을 감시자들에게 고발했던 일이 14호 정치범수용소가 아닌 인근의 18호 수용소에서 있었던 사건임을 인정한 것이다. 또 신씨는 13세 때 수용소를 탈출했다가 다시 잡힌 뒤 모진 고문을 당했다고 기술했지만, 이번에 그는 그 사건이 13세가 아닌 20세 때의 일이었다고 증언을 번복했다. 앞서 북한은 신씨의 아버지를 내세워 신씨의 증언을 반박하기도 했다. 그래도 북한 정권보다 신씨를 믿었다. 동기가 무엇이든 신씨의 증언에 무한 신뢰를 보냈던 사람들에게는 실망과 당혹감을 준 것임에 틀림없다.

킨들을 켜고 <14호 수용소 탈출>을 다시 읽었다. 군데군데 별도로 표시해 둔 곳이 눈에 들어왔지만 내용의 진위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2005년 1월2일, 당시 23세의 신씨가 탈출에 성공하기 전까지 정치범수용소를 도망쳐 나온 사람이 없다고 서문에 적혀 있다. 영양부족으로 인한 단신(短身) 등이 정치범수용소에서 겪은 고난의 표시였다. 신씨는 이제부터 예상치 않은 도전들과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진실게임으로 불러도 좋다.

국정감사가 진행되었던 지난 10월 오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새누리당 윤상현의원이 북한 정치범 수용소 규모에 대해 통일부 장관에게 질문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북한으로서는 호재를 만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일로 국제사회의 이목은 또다시 북한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악재가 될 수도 있다. 유엔인권위가 지난해 2월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정치범수용소 감금자, 종교 활동을 한 자, 강제 송환된 탈북자, 외국인 피랍자들에 대한 인권 침해의 심각성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마르주키 다루스만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이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9일부터 23일까지 일본을 방문한다. 동시에 로버트 킹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역시 유엔과 국제사회와 북한 인권상황을 논의하기 위해 20일부터 23일까지 유럽을 방문한다. 향후 ‘창’과 ‘방패’가 어떻게 전개될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비확산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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