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박 대통령의 “북한이 호응할 여건 조성”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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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사설]박 대통령의 “북한이 호응할 여건 조성” 주목한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1. 19.

통일부·외교부·국방부·국가보훈처는 어제 통일준비를 주제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올해 업무보고를 했다. 보고 내용은 다채롭고 풍부했다. 정부내 통일준비 인력 양성 및 부처별 전담관 지정을 내용으로 하는 평화통일기반구축법 추진이 눈에 띈다. 열차로 서울~평양~신의주~나진을 연결하는 한반도 종단 열차 시범운행 계획도 있다. 서울과 평양에 남북겨레문화원을 설치하는 방안도 들어가 있다. 광복 70주년 남북공동기념위원회 구성을 북한에 제안한다는 내용도 있다. 민생·환경·문화의 3개 분야에서 남북간 통로 개설을 협의하겠다고도 했다.

다 좋은 내용이다. 그런데 이런 과제들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실천 계획은 보이지 않는다. 평화통일기반구축법외의 대부분은 북한과 만나서 협의해야 할 것들이다. 북한을 설득하고 유인책도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남북대화는 단절되어 있다. 언제 만나 이 구상에 합의할 수 있을지 전망할 수 없다. 정부는 겨우 북한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남북대화 재개에 호응할 것 촉구했을 뿐이다.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동안 형식에 구애받은 쪽은 정부였다. 정부는 회담대표의 급을 따지고 공개 회담을 고집하고 북한이 흡수통일 기구라고 비난하는 통일준비위원회를 대화의 주체로 앞세우며 형식을 중시하고 대화라는 실질을 경시했다. 그런 정부가 막연히 대화론을 편다고 대화의 문이 쉬 열릴 것 같지 않다. 이게 바로 업무보고에서 풀어 놓은 보따리들이 공허해 보이는 이유다.


이번 업무보고의 상당 부분은 이명박 정부가 발동했고 박근혜 정부가 그대로 계승한 대북제재 조치인 5·24 조치에 저촉된다. 5·24조치를 그대로 둔 채 남북교류협력 구상을 나열하는 건 자가당착이다. 5·24 조치 해결책 없이 발표한 통일준비 구상들은 내부정치용, 생색내기용으로는 좋을지 모르나 한반도 평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없다. 대화의 문이 닫혔는데 이 많은 사업을 올해에 다 하겠다면 누가 믿을 것인가.

다행히 박 대통령은 업무보고를 받고 “북한이 (대화에)호응해 올 수 있는 여건 마련에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 발언이 또 다른 생색내기나 비판여론 호도를 위한 빈말이 아닌, 대북정책 전환의 신호이기를 바란다. 대화를 하겠다면 박 대통령 스스로 대화를 간절히 원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진정 원하는 게 대화라면 비밀 접촉이든 비공식 대화든 형식을 따지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무릎꿇고 항복할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대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다른 접근을 할지 지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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