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강경책이 능사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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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대북 강경책이 능사 아니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2. 3.

2016년을 맞이하자마자 북풍이 몰아쳤다. 지난 1월6일 북한은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실험 직후 수소폭탄의 진위를 둘러싼 논의도 있었지만, 더 큰 문제는 제4차 핵실험에 대처하는 방식을 둘러싼 논의였다.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남한의 핵무장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정부는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러한 논의는 유엔으로 대표되는 국제사회를 통해 북한을 고립시켜야 한다는 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북한의 제4차 핵실험이 갖는 심각성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주변국의 호응을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현실성도 없다. 한국의 핵개발이 일본의 핵무장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비판 이전에 그로 인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5자회담은 중국이나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한 냉전시대의 한·미·일 남방 3각동맹과 북·중·러 북방 3각동맹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더 부추길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좀 더 냉정하게 1994년과 1998년, 그리고 2006년 제1차 핵실험 때 미국 정부가 오히려 전향적인 외교정책을 실시한 이유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했을 때 미국은 북한과 제네바 협정을 맺었고, 북한을 국제사회에 다시 복귀시켰다. 1998년 영변 금창리 핵시설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 페리 프로세스를 통해 포괄적 접근방식을 취했고, 국무장관의 방북에 이어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도 추진했었다.

2006년 북한의 핵실험 직후 부시 행정부는 미국의 북핵정책이 실패했음을 자인했다. 북핵정책의 목표는 북한의 핵개발을 막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대북 강경파였던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존 볼턴 유엔대사가 교체되었다. 이어 2008년 북한은 영변 핵시설에 위치한 냉각타워를 해체하고, 미국은 뉴욕 필하모닉의 평양 공연으로 화답했으며,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가 추진되었다.


물론 이러한 세 번의 과정은 모두 성공적이지 못했다. 1994년의 제네바 합의는 9·11 테러 이후 무효로 돌아갔고 2000년과 2008년의 시도는 이듬해 들어선 행정부의 새로운 대북정책에 의해 연속성을 가질 수 없었다.
2009년 8월4일 평양을 방문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9년 8월4일 평양을 방문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핵 위기 직후 미국이 대북 강경책보다 대화와 타협을 모색했던 것은 미국 정부 내 소위 ‘종북좌파’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첫째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찾고자 한 것이다. 대북 압박이 북한 정권의 핵포기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핵개발 성공으로 이어졌다. 북한 정권은 평양 주재 미국대사관의 개설로 정권 안보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둘째로 비용이 가장 적게 든다는 점이다. 강경정책을 쓰기 위해서는 군사비 증강뿐만 아니라 동북아에 대한 미국의 개입 역시 강화해야만 했다. 이는 중국이 극도로 꺼리는 방식이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중국을 설득해야 한다는 또 다른 비용을 치러야만 했다. 결국 북핵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지극히 현실주의적 접근이었다고 볼 수 있다.

2000년이나 2008년과 마찬가지로 2016년은 오바마 대통령의 마지막 임기년이다. 그리고 또 한 번 북핵 위기가 왔다. 미국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현실주의적으로 접근할 것인가? 미국은 IS 문제로 인해 중동에 발이 묶여 있으며,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철수 역시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한국과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볼 가능성도 있다. 물론 오바마 행정부가 마지막 해에 업적을 내기 위해 적극적인 공세 또는 타협으로 극적 선회를 시도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중요한 때 한국 정부는 사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듯하다. 북한 핵위협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은 충분하다. 그러나 사드가 북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오히려 사드 문제로 인해 그동안 공들여온 한·중 공조관계를 한 방에 날려보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역시 적지 않다. 비용만 증가시키는 것은 아닐까? 북핵 위기에서 과거 미국 정부가 왜 전향적 정책을 취했는가를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1994년과 2008년, 국내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열강들의 대북정책과 각을 세우다 외교적으로 고립되었던 경험을 상기해야 한다.

대한민국호는 변화된 세계 정세 속에서 미국과의 공조하에 대북정책을 주도하면서 우호적인 한·중관계를 지속해야 한다는 외교적 좌표를 잃어버리고 표류해서는 안될 것이다.


박태균 | 서울대 교수·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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