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한동대 교수·국제정치학
미국이 대만에 58억5000만달러어치의 무기를 판매하기로 한 것을 두고 중국이 내정간섭이라고 강력하게 비난하자, 미국은 한술 더 떠 추가 무기판매까지 고려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오바마는 출범부터 전임 부시 행정부의 대중봉쇄노선을 지양하고, 전략적 파트너로서 협력강화를 표명했다. G2로 언급하며 중국의 중요성을 인정했고, 양국 고위급 전략대화를 정례화하는 등 협력을 촉구하는 움직임도 다양해졌으나, 양국의 전략적 목표는 수렴보다 갈등요소가 훨씬 우세해지고 있다. 북핵문제, 환율분쟁, 남중국해 영토분쟁, 대만무기판매, 티베트 문제, 중국 내 인권과 민주화 문제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의 갈등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AFP연합뉴스 | 경향신문DB
동북아에서도 상호의존과 미·중경쟁의 양면성이 심화되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국제정치적 안정 속에서 경제발전에 매진한다는 것이 최우선 목표이므로, 미국의 패권역할이 여전히 필요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공공재 공급에 한정된 자유주의적 ‘선한 패권(benign hegemony)’은 인정할 수 있으나, 봉쇄와 개입을 의미하는 현실주의적 ‘악한 패권(malign hegemony)’의 미국은 중국이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중국이 당장 세계무대에서 미국과 패권을 다툴 의도는 없어 보이지만, 동북아 및 동남아 지역패권으로서의 위상과 영향력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사활적 이익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영토분쟁과 해상수송로의 확보에서는 대미갈등까지 각오하는 양상이다. 미국 역시 전 세계 16개 핵심 전략 해상로 중 3곳인 중국해, 말라카, 순다해협이 있는 이곳을 포기하기 어렵다.
문제의 본질이 상당히 구조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 해결이 쉽지 않다. 우선 냉전 20년이 지났음에도 냉전질서는 해체되지 않은 채 중국의 부상이 가시화됐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냉전과 탈냉전 질서의 공존은 미·중관계의 대결과 협력이라는 이중성과 일치한다. 이는 냉전질서의 해체가 전제되지 않는 한 동북아에서 미·중관계의 협력적 관계를 통한 평화체제 수립은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다. 약 40년간 미·중이 협력관계를 이어왔다는 점에서 과거 미·소대결구도와는 분명 차별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중협력은 늘 한계를 지녀왔고, 어느 쪽도 냉전질서를 넘어서는 수준의 협력을 하지는 않았다. 이는 중국이 사회주의를 고집해왔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이 아시아에 구축한 질서는 유럽의 다자질서와는 달리 중첩적인 쌍무동맹체제였다. 샌프란시스코체제라고 불리는 이 질서는 냉전붕괴 이후에도 일부 약화만 있었을 뿐 해체되지 않았다. 특히 대만문제와 한반도 분단은 본 체제의 내구성을 견인했다. 게다가 9·11 이후 부시독트린이 동맹구조를 더욱 강화시켰고, 북한의 핵개발은 북·중과 한·미 간의 대결구조를 부활시켜 신냉전적 양상까지 띠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해양 영토분쟁은 동북아에서의 안정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는데 심각한 장애물로 부각되고 있다. 2010년에 경험했듯이 동북아를 넘어 동남아로 확대되고 있으며, 대부분 중국과 연관되어 있다. 미국은 중국과 영토문제를 갖고 있는 주변 나라들에 편승해서 중국을 자극했다. 더욱이 내년 2012년엔 동북아 역내국들 대부분이 정권교체기를 맞게 되는데, 국제경제의 난기류 상황과 맞물려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 국내정치적 필요에 의해 각국은 협력보다는 경쟁적 민족주의 성향을 드러낼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강대국들의 이익이 첨예하게 교차하는 동북아에서 평화와 안정을 위한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가.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이다. 우리의 능력을 최대치로 키우고, 미·중갈등이 최소치에 머무른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상황은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 악화와 친미일변도의 정책은 딜레마적 선택에 빠지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적 변화를 위한 변수 역할을 할 수 없게 만들었기에 더욱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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