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집권 자민당이 일본의 침략전쟁을 단죄한 도쿄재판 검증을 위해 총리 직속으로 위원회를 두기로 했다고 한다. 도쿄재판의 진행절차와 판결 내용을 되돌아보고 제대로 된 판결이었는지를 따져보겠다는 뜻이다. 도쿄재판은 나치를 심판한 뉘른베르크 재판과 함께 전후 처리의 양대 축이다. 일본은 이 판결을 받아들이고 주권을 회복해 국제사회로 복귀했다. 그러므로 이를 검증한다는 생각 자체가 이미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업신여기는 행위다.
일본의 도쿄재판 검증은 이웃 국가에는 패전에 대한 진지한 고민없는 평화의 역주행이지만 아베 총리 스스로에게는 확신에 찬 사안들이다. 2차례 집권과정에서 아베 총리가 진단한 일본은 ‘패기 제로’ 사회였다. 잃어버린 20년으로 경제는 파탄 났고, 젊은이들도 패배의식이 만연했다. 그는 위축된 역사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여겼다. 때맞춰 중국 팽창에 대항해 미국이 일본의 재무장을 부추기던 터였다.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에게 들러붙어 있던 전범 딱지를 뗄 필요도 있었다. 우익들은 오래전부터 도쿄재판 검증 1000만명 참여 등 물밑 준비를 해왔다. 이미 ‘펄 판사의 일본 무죄론’으로 이념 무장도 된 터다. 도쿄재판에 참여한 인도 출신 판사 펄은 소수의견으로 일본 무죄를 주장했다. ‘일본 무죄론’에는 펄이 당시 교과서 때문에 ‘어린 학생들이 잘못된 죄악감에 빠져 비굴, 황폐해져 가는 것을 지나칠 수 없었다’는 대목도 나온다. 우익들에게 펄은 숭배 대상이었다. 이를 보면 아베에게 도쿄재판 검증은 일본 근·현대사 미화의 결정판이자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나라가 되기 위한 종착역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도 보수를 결집시키기 위한 무기이다. 이러니 일본 내평화세력이나 주변국의 우려가 귀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A급 전범인 도조 히데키 전 일본 총리가 극동군사재판(도쿄재판)에서 판결을 듣고 있다._연합뉴스
판단이 끝난 사안을 두고 이런 낡은 싸움을 진행하는 아베 총리의 모습에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박 대통령은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에는 대한민국은 태어나선 안될 나라로 서술돼 있다. 역사를 잘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여권 내에서는 일본극우 용어인 ‘자학사관’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쓰인다. 잘못은 감추고 자랑하고 싶은 역사만을 기록하려는 일본 우익의 주장과 다를 바 없다. 아베 총리를 역사 수정주의자라고 했던 그간 비판이 낯뜨거울 지경이다. 국가가 해석한 하나의 역사만을 올바른 역사라고 하는 박 대통령이 아베 총리에게 올바른 역사인식을 주문할 명분도 없다. 역사의 기록은 바꿀 수 있겠지만 역사적 사실은 변치 않는다. 아베 총리의 잘못을 따지기 위해서라도 박 대통령 자신부터 떳떳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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