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다음달 9일 열리는 러시아 전승절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신 대통령 정무특보이자 친박 실세인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을 특사로 파견키로 했다. 정부는 지난 10일 외교 경로를 통해 이런 방침을 러시아 측에 통지했다고 한다.
이로써 남북정상회담 개최는 물론 박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국제외교 데뷔 무대에 동참할 기회도 무산됐다.
박 대통령의 러시아 정부 행사 참석 여부를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행사 불참 결정 과정에서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모습을 여지없이 드러내 체면을 구겼다. 주권국가로서의 결단성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행사 참석에 부정적인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시간을 끌다가 행사를 한 달도 안 남긴 시점에 와서야 가까스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서방의 러시아 제재와 서방
정상 대다수의 불참 방침을 이유로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둘 다 이미 오래전 결정된 것이어서 뒤늦은 결정에 대한 해명으로는
합당하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오후 청와대에서 정의화 국회의장, 양승태 대법원장,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이완구 국무총리, 이인복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 5부 요인을 만나 중동 4개국 순방 성과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박근혜 정부는 이전에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국 배치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문제에서 능동적
대처를 못하고 미국과 중국에 휘둘려 시간만 끌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급기야 사드 문제에 대해 중국 외교부 고위인사가 한국
정부를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한국 외교의 핵심 가치인 중심과 균형을 잡지 못하고 강대국 의존과 편향을 선택한
대가다.
정부의 이번 결정으로 남북은 장기화된 경색 국면의 반전 기회를 놓칠 가능성이 커졌다. 물론 남북정상회담이 ‘만능열쇠’는 아니다.
서로 간에 최고지도자까지 비난하는 현재 상황에서는 정상회담이 성사된다 해도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윤 의원이 특사 자격으로
북측과 접촉하는 것이 더 생산적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의 방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정부의
실천적 의지와 구체적인 실행 계획의 존재 여부다. 북한에 대한 정부의 근본적 태도 변화가 없다면 누가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의미
있는 결실을 맺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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