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하이옌(Haiyan·海燕)이 할퀴고 간 필리핀 중부지역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지난 8~9일 태풍이 관통한 레이테섬과 사마르섬 등은 완전히 쑥대밭으로 변했다. 거의 모든 건물과 도로가 파괴되고 시신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는 레이테섬의 주도 타클로반의 참상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다. 36개 주에서 사망·실종자가 1만2000여명, 이재민이 430만여명에 이르고 그 숫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태풍의 위력과 재난의 규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하이옌의 재난은 불가항력적인 요소가 있다. 최대 순간 풍속이 시속 379㎞(초속 105m)로, 이제까지 어떤 강력한 태풍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위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지난 1969년 순간 풍속 시속 304㎞를 기록했던 허리케인 카밀을 훨씬 능가하는 강풍과 3m 이상의 해일을 동반한 것 등이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지적된다. 베니그노 아키노 3세 필리핀 대통령이 “전쟁 준비 수준의 대비를 마쳤다”고 했음에도 피해 규모를 줄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피해 지역의 통신이 두절되고 교통이 마비돼 접근이 어려운 상태라고 하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필리핀 구호물자 수송 작전 (출처: AFP 연합뉴스)
다행히 국제사회가 필리핀의 태풍 재난 구호에 매우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유럽연합(EU)·영국·미국·러시아·호주·뉴질랜드·인도네시아 등이 구호 자금과 장비 지원에 나섰고, 일본도 긴급 의료진을 파견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 정부도 어제 상당한 규모의 긴급 인도적 지원 방침을 밝혔다. 6·25 참전국이며 오랜 외교관계가 있는 우방이자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입은 점을 감안해 지원 규모를 결정하겠다고 한다. 양국 간의 특별한 관계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긴급한 도움이 필요한 나라를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필리핀의 이번 재난은 인류가 공동으로 처하고 있는 위험이라는 점에서 단지 남의 일로만 볼 수 없다. 최근 지구촌 곳곳에서 재난의 빈도가 잦아지고, 그 규모도 자꾸만 커지고 있다. 대형 재난에는 국경이 따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원인의 하나인 기후변화의 방지 노력과 더불어 적응 차원에서도 국제적 연대가 매우 중요해진 시점이다. 재난은 신속한 구호가 생명이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정부의 좀 더 적극적이고 신속한 지원이 필요하고, 필리핀과의 특별한 관계를 고려하면 더더욱 지원 규모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필리핀 국민이 하루빨리 슬픔과 고통을 극복하고 재건의 희망을 갖게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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