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또 밝혀진 한·일 과거사, 일본은 계속 외면할 텐가
본문 바로가기
경향 국제칼럼

[사설]또 밝혀진 한·일 과거사, 일본은 계속 외면할 텐가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11. 19.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발견되어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된 세 종류의 일제강점기 피해자 명부에 대한 대강의 분석 내용이 공개됐다. 3·1운동 피살자 명부와 일본 간토(關東)지진 시 피살자 명부, 일정(日政) 시 피징용자 명부 등 세 가지 명부 67권이다. 모두 1952년 12월 당시 이승만 대통령 지시에 따라 정부 차원에서 전국 조사를 통해 작성한 기록물로 하나같이 역사적 가치가 큰 자료들이다.


당장 3·1운동에 대한 일제의 탄압 역사부터 새로 써야 할 필요가 생겼다. 그동안 3·1운동으로 희생된 순국자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자료가 없어 391명에 대해서만 독립유공자로 인정해왔다. 이번에 발견된 자료에 희생자 630명의 이름과 나이, 주소, 숨진 일시와 장소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는 만큼 이것만으로도 순국자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나는 셈이다. 간토대지진 피해의 경우 이제까지는 한국인 피해자 숫자를 6600~2만명으로 추정할 뿐이었으나 희생자 명단과 구체적인 피살 상황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자료가 나옴으로써 진상규명에 한발 다가갈 수 있게 됐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피해자 22만9781명의 이름과 생년월일, 주소 등이 65권에 걸쳐 수록돼 있는 피징용자 명부다. 이것은 우리가 유일한 정부 차원의 조사기록으로 알고 있던 1957년 왜정 시 피징용자 명부보다 최소 4년 이상 앞서 작성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자료다. 여기에 등재된 사람수는 1957년 명부보다 5만명가량 적지만 기존 명부에는 없던 생년월일과 주소가 포함돼 있어 사료적 가치는 한층 크다고 할 수 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 보상 문제에 중요한 근거자료로 쓰일 수 있는 것이다.


국가기록원, 일제강점기 피해자 명부 공개 (출처 : 경향DB)


이번에 공개된 자료를 보면서 일본 정부에 묻고 싶다. 일제 침략의 과거사, 한국인 개인의 피해 상황을 보여주는 새롭고 명백한 사료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는데, 언제까지 모르쇠로 일관할 생각이냐는 것이다. 일본은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모든 피해 배상이 완결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개인 청구권은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게 한국 법원의 판단이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사과와 반성, 피해자 손해배상을 하지 않으면 한국과 전향적인 미래 관계를 열어가기 어렵다는 게 이번 자료 공개로 또 한번 분명해졌다.


우리 정부에도 유감을 표명하고 싶다. 국민 세금을 들여 귀중한 자료를 만들었으면 언제라도 필요할 때 활용할 수 있도록 관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부의 기록관리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하길래 그런 중요기록물이 재외 공관의 어느 구석진 곳에 60년 동안이나 방치돼 있을 수 있었던 건지 이해가 안 간다. 정부의 공식 조사자료임에도 활용하기는커녕 그런 게 있는지조차 까맣게 몰랐다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혹시 자료의 존재를 알면서도 일본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쉬쉬했던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정부는 이 대목에 대해서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명쾌한 설명을 할 필요가 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