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영유권 논란과 적대감의 정치적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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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국제칼럼]영유권 논란과 적대감의 정치적 활용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11. 17.

며칠 전 아르헨티나 외교부 장관이 남대서양 말비나스(영국식 명칭은 포클랜드) 섬의 영유권 문제와 관련해 영국 정부에 협상을 요청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아르헨티나에서 480㎞쯤 떨어져 있는 포클랜드는 1만2800㎞나 떨어져 있는 영국의 영토로 자치권을 누리고 있다. 이 섬의 영유권 문제는 양국의 해묵은 논란거리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스페인 왕실의 지원을 받은 마젤란의 원정대가 1520년 말비나스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영국 정부는 1690년 자국의 해군 대위 존 스트롱이 이 섬에 최초로 상륙해 후원자인 포클랜드 자작의 이름을 붙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18세기 말 이 무인도에 프랑스, 영국, 스페인의 정착촌이 생겼고 영국과 프랑스가 비슷한 시기에 영유권을 주장했으나 프랑스는 경제적 이유로 정착촌을 스페인에 넘겼다. 곧이어 영국도 경제적 이유 탓에 정착촌에서 철수했다. 이 섬은 스페인 경비대가 식민지인들의 봉기를 진압하고자 1811년 내륙으로 요새를 옮긴 뒤 영국과 미국의 어선들만 간간이 눈에 띌 뿐 다시 무인도로 남게 되었다. 한편 아르헨티나는 1816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할 때 포클랜드의 영유권까지 넘겨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이곳에 정착촌을 세웠다. 그러나 영유권을 양보하지 않았던 영국은 1833년 아르헨티나 경비대를 내쫓고 정착촌을 재건한 뒤 현재까지 실효적 지배를 유지해왔다.


포클랜드를 둘러싼 논란은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배 청산과 긴밀히 얽혀 있던 터에 인기 없는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정권의 무모한 도전 탓에 더욱 복잡해졌다. 1960년대 아르헨티나의 영유권 주장이 거세졌을 때 유엔은 이를 식민지배의 유산으로 파악하고 양국에 평화적 해결을 권고했지만, 여러 차례의 협상에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다가 1982년 4월 초 아르헨티나의 기습 점령을 계기로 70여일 동안 포클랜드 전쟁이 벌어졌다. 국내 ‘불순세력’에 대해 ‘추악한 전쟁’을 벌인 아르헨티나 군부는 경제위기 속에 영국과의 일전을 불사했다. 아르헨티나의 완패로 끝난 이 불필요한 전쟁은 900명이 넘는 양국의 인명 손실과 더불어 군부독재 정권의 몰락을 초래했다.


양국의 외교관계는 1990년 재개되었지만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고 지난 몇 년간 적대감을 활용하려는 아르헨티나 정부의 의지는 더 뚜렷해졌다. 2009년 영국 정부의 협상 불가 방침에 맞서 아르헨티나 의회는 포클랜드 영유권을 뒷받침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2010년 2월 포클랜드 해역에서 영국의 해저 석유 탐사와 시추 계획으로 긴장이 고조되자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자국 영해를 거쳐 포클랜드로 향하는 모든 선박은 허가증을 얻어야 한다고 공표하고 이웃 국가들의 협조를 구했다.


하지만 핵심 관건은 섬 주민들의 결정일 것이다. 예전에 양국 간의 비밀 협상이 알려지자 섬 주민들은 아르헨티나 귀속 가능성에 격렬히 반발했으며 포클랜드 자치정부가 올해 3월 주민투표를 시행한 결과 영국령 잔류의 찬성률은 99.8%에 이르렀다. 3000명에 이르는 주민들의 다수는 웨일스와 스코틀랜드 출신 이주민의 후손이고 유권자 등록을 마친 아르헨티나 출신은 18명에 불과했다.


포클랜드 영국령 잔류 선택(출처 :로이터연합)


또한 대다수 아르헨티나인들이 ‘말비나스는 우리땅’이라고 단언하는 가운데 이런 민족주의 감정을 적극 활용하려는 정부의 의도를 경계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할 것이다. 역사가 루이스 알베르토 로메로는 말비나스가 아르헨티나에 속하든 아니든 크게 변할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1982년 군부독재 정권의 무모한 도전에 대중이 보낸 지지를 떠올리면서 다시 아르헨티나 사회를 정신적 상흔에 빠뜨릴 수 있는 민족주의 감정의 고조에 우려를 표명한다. 그런 뜻에 동감하는 이들은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포클랜드를 돌려받자는 구상이 아르헨티나 사회의 우선적 요구일 수 없으며 그 주민들을 포함하는 협상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전쟁이 끝나고 30여년이 흐른 현재 국민 대다수는 그런 일이 재발해서는 안된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그럼에도 국가 간의 정치적 대립을 적대감 고조의 기회로 삼는 것과 진지하고 냉철한 해법 모색을 가로막는 일전불사의 분위기가 여전히 되풀이되는 것은 그곳이나 이곳이나 그리 다르지 않은 듯하다.


박구병 | 아주대 교수·서양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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