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행정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이 4일 홍콩 시위를 촉발한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을 철회하겠다고 선언했다. 시위대가 요구해온 5개 사항 중 첫째 조건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로써 중국 정부의 시위대에 대한 강경진압 예고로 제2의 톈안먼(天安門)사건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은 넘겼다. 홍콩 정부가 시위대의 요구를 전부 수용하지도 않았고, 시기적으로 조치가 너무 늦기는 했지만 홍콩 정부의 진일보한 결정을 환영한다. 국내 소요 사태에 대해 늘 강경하게 대응하는 중국 중앙정부임을 감안하면 결코 작은 성과가 아니다.
홍콩 캐리 람 행정장관. 로이터 연합뉴스
이번 송환법 철회는 민주화를 열망하는 홍콩 시민의 승리다. 홍콩 시민들은 지난 3월 초 홍콩 당국이 송환법 제정을 추진하자 6월부터 본격적으로 반대 시위에 나섰다. 송환법이 홍콩에 있는 반중·인권 운동가를 중국으로 압송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후 지난 14주 동안 쏟아진 장대비도, 중국 정부의 위협도 시민들의 민주화 의지를 막지 못했다. 특히 당국의 방조하에 자행되는 백색테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비폭력으로 맞선 홍콩 시민을 지켜보면서 세계인이 응원했다. 중국 정부가 특수부대를 인접 도시에 배치하고 시위 지도부를 체포했지만, 시민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해 집회를 이어갔다. 물론 이번 철회 조치는 다음달 1일 ‘신중국 건국 70주년’ 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 강경 대응을 자제한 결과인 것은 맞다. 그러나 홍콩 시민들의 견고한 민주화 의지와 세계인들의 눈을 부릅뜬 감시와 지지가 없었다면 이번 조치는 결코 나올 수 없었다. 이 점에서 홍콩 시민의 승리이자 세계인의 승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환법은 철회됐지만 사태가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시위대는 나머지 4가지 요구, 즉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와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을 요구하고 있다. 홍콩 및 중국 중앙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오는 주말로 예정된 15차 시위와 이후 상황에 따라 사태의 추이가 결정된다. 중국 정부가 나머지 4개 요구를 적극 수용하지 않는 한 시위대는 물러서기 어렵다. 시위대에 대한 백색테러와 홍콩 경찰의 방조를 경찰 자체 위원회로 조사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중국이 세계의 지도국을 자처한다면 시위대의 민주화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경향 국제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침을 열며]성룡과 주윤발 (0) | 2019.09.09 |
---|---|
[사설]미국의 잇단 대화 손짓, 북한 화답하기를 (0) | 2019.09.09 |
[사설]우려스러운 북·미 간 ‘협상 교착’ 책임 떠넘기기 (0) | 2019.09.02 |
[여적]중국의 ‘큰손 아줌마’ (0) | 2019.08.30 |
[사설]미국의 과도한 GSOMIA 압박, 동맹국 자세 아니다 (0) | 2019.08.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