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6월28일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총성이 울렸다. 19세 세르비아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암살했다. 그리고 얼마 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4년여의 전쟁으로 900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2016년 1월2일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걸프만 연안 도시 카티프 출신 시아파 인사 4명이 처형됐다. 다음날 이란 주재 사우디 공관이 불탔다. 사우디 정부는 즉각 이란과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바레인, 수단, 지부티 등 다른 아랍국가들도 이란과 국교를 끊었다.
중동의 거대한 양대 세력 수니-시아파 사이에 갈등이 본격화하고 있다. 당장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군사력에서는 압도적이지만 이란이 사우디에 대해 물리력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란은 어렵게 서방과 핵협상을 타결했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아왔다. 곧 모든 제재가 풀리고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으로 돌아오게 되는 상황이다. 수십년간의 제재로 피폐해진 경제를 재건하는 것이 급선무다.
사우디 정부는 이란이 처한 현재 상황을 명확히 인식하고 시아파 인사들을 처형했다. 핵협상 이후 중동의 패권국가로 부상할 모든 잠재력을 가진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더 큰 틀에서는 시아파의 영향력 확대를 봉쇄하기 위한 것이다. 사우디 인구의 최소 10% 이상은 시아파다. 카티프를 중심으로 동부에 밀집해 살고 있다. 동부는 유전지역이다. 또 바닷물을 담수화해 수도 리야드에 물을 공급하는 지역이다. 사우디 경제와 삶의 생명선이 있는 곳이다. 사우디 정부는 이곳에서의 반정부 준동을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행히 아직은 수니-시아파 국가들 정부 차원에서의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수면 아래에서는 민심이 끓고 있다. 이라크, 바레인, 레바논 등 시아파가 다수인 국가들에서 반사우디 시위와 폭력이 이어지고 있다. 1400여년 억눌려 온 시아파의 분노가 표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2003년 이라크 전쟁으로 사담 후세인의 수니파 정권이 무너지고 시아파 정권이 등장한 이후 분노 표출은 이어져 왔다. 권력을 차지한 인구 65%의 시아파는 수니파를 억압하고 소외시켜 왔다. 이에 반발해 등장한 것이 반군성향의 수니파 테러세력 이슬람국가(IS)다.
수니-시아파 갈등은 이미 전초전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멘에서는 수도를 점령한 시아파 후티 반군을 이란이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사우디는 지난해 3월부터 수니파 예멘 정부를 도와 군사적 개입을 하고 있다.
시리아에서는 이란이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고 있고, 사우디와 다른 아랍국가들은 수니파 반군세력에 무기와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시아파인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이라크 중앙정부도 시리아 정부에 병력과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슬람 인구의 15% 정도인 시아파는 7세기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 후계자 문제를 두고 등장했다. 종교가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 등장한 분파다.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가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정치적 무리였다. 어렵게 알리가 4번째 후계자가 됐지만 암살당했다. 두 아들도 독살되거나 처형됐다. 이후 1400여년 이슬람 역사 내내 소외되고 억압받았다. 정치적으로 축출된 소수파였기에 집권 수니파 세력에 도전할 여력이 없었다.
전환점은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이었다. 최초로 시아파 성직자들이 권력을 잡은 것이었다. 이후에도 이란은 국제사회의 다양한 제재와 압력에 눌려 있었다. 그런데 핵협상 타결 이후 이란이 모든 제재에서 벗어나고 있다. 중동에 새로운 정치경제 지형이 다시 형성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다. 세르비아 민족주의자 청년이 쏜 두 발의 총탄처럼, 사우디 동부 카티프에서의 시아파 집단처형이 거대한 충돌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서정민 |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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