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미국의 ‘전략적 인내’와 한국의 주인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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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시론]미국의 ‘전략적 인내’와 한국의 주인의식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1. 7.

“우리가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전보다 북한을 더욱 고립시키고 국제사회의 단결을 이루는 데는 성공했다.” 북한이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지난 6일 미국 백악관이 내놓은 입장 가운데 일부이다. 이 발언 속에는 ‘전략적 인내’라고 불리는 미국 대북정책의 현실과 모순이 잘 담겨 있다. 역대 미국 정부와 마찬가지로 오바마 행정부 역시 ‘한반도 비핵화’를 대북정책의 목표로 제시해왔다. 하지만 북한의 네 차례 핵실험 가운데 세 번이 오바마의 임기 동안 실시됐다. 이에 따라 ‘전략적 인내’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백악관은 북한에 대한 고립과 국제적인 압박에는 성과를 냈다며 비판의 예봉을 피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본말이 전도된 현실과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대북 제재와 고립, 봉쇄와 압박은 한반도 비핵화 달성을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어느덧 목표와 수단이 뒤섞이고 이제는 그 수단이 목표인 것처럼 되어버렸다. 나는 북한의 핵실험 의도가 미국의 관심 끌기나 대미 협상용보다는 핵 억제력 완성을 과시해 경제건설에 매진하겠다는 ‘병진노선’에 따른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북한의 무모하고도 반평화적인 핵실험은 미국 정계에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오바마의 임기 마지막 해인 데다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 ‘핵 뇌성’이 울려퍼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전략적 인내’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그 선두에는 공화당 대선주자들이 있다. 마르코 루비오는 “북한은 핵무기를 확대하려는 미치광이가 통치하고 있는데 오바마는 팔짱만 끼고 있다”고 비난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오바마가 중국에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며, “중국이 북핵을 해결하지 않으면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을 줄이겠다고 위협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_AP연합뉴스


그런데 미국의 대북정책을 둘러싼 논란에서 세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먼저 ‘전략적 인내’는 유력한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의 작품이어서, 공화당의 정치공세는 오바마뿐만 아니라 힐러리도 겨냥하고 있다. 또한 ‘전략적 인내’는 결코 대북 유화나 포용 정책이 아니어서 대북 제재와 압박, 국제적 고립과 군사적 대응책 강화를 주문하는 공화당의 강경정책과 거의 차이가 없다. 끝으로 사정이 이렇다면 적극적인 대화와 협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올 법한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보면, 미국은 북핵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별로 없고 그럴 처지도 못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태평양 건너에 있는, 그것도 세계 최강의 핵보유국인 미국이 북한의 핵 개발에 당장 심각한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에 따라 오바마 행정부는 남은 임기 1년 동안 대북 제재와 압박 강화라는 실패한 정책을 되풀이할 공산이 크다.

우리가 북핵 해결에 주인의식을 가져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의 실패한 대북정책의 반복과 북한의 핵전력 강화라는 악순환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한국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직시해야 한다.

기본은 “상대방이 불안해야 내가 안전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상대방이 안전해야 나도 안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고르바초프의 신사고에 있다. 이러한 사고의 전환이야말로 총성 한방 울리지 않고 미·소 냉전 종식을 가져온 힘이었다. 이걸 한반도에 적용한다면 바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속에 불가능해 보이는 북핵 해결의 실마리도 담겨 있다.

협상 무용론이 득세한 지 오래고 이번 핵실험으로 더욱 팽배해지겠지만, 사실 협상다운 협상은 없었다. 9·19 공동성명에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기 위한 “별도의 포럼”을 열기로 했지만, 10년이 넘도록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이제 한국이 주도해서 평화 포럼의 문을 열어야 한다. 그래야만 북한을 비핵화의 장으로 초대할 수 있다.


정욱식 | 평화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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