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이산가족 사업이 성공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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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아침을 열며]이산가족 사업이 성공하려면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9. 9.

지난 8월25일 남북 합의에 따라 추석 이산가족 상봉이 다음달 20일부터 26일까지 금강산 면회소에서 열린다. 남북 각각 100명씩 모두 200명이 가족들을 만난다. 그런데 이번 합의는 남과 북이 24시간 마라톤협상을 한 끝에 나온 결과치고는 빈약하다. 그동안 19회나 상봉 행사를 했기 때문에 상봉 규모는 이전처럼 될 수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결국 남북이 그렇게 회담 시간을 오래 끈 이유는 상봉 날짜 때문인 것 같다.

언론 보도대로 만약 우리 측이 6만명 생사확인, 고향 방문 등 문제를 꺼냈다면 북한이 토의 자체를 거부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결국 시간을 끌다 상봉 규모와 날짜만 잡고 일단 회담을 끝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상봉 날짜를 잡는 데 문제가 있었다.

우리 측은 10월10일 이전에 상봉을 하자고 했지만, 결국 10월10일 북한의 대내 행사 때문에 북한이 제시한 날짜로 결론이 났다. 애초에 10월10일 이전을 요구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측은 북한이 10월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으로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그 이전에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치르려는 계산에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면 북한이 10월10일을 전후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면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더 이상 안 할 생각이었단 말인가?

8·25 남북 합의에서는 이번 추석 이산가족 상봉을 하고 나서도 그 사업을 계속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10월10일 이전을 고집하다가 결국 북한 주장대로 날짜를 잡고 돌아올 일이 아니라 처음부터 북한이 앞으로도 이산가족 사업에 협조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을 세우고 이번 협상에 임했어야 한다.


이산가족민원실을 찾은 노인들이 신청서 작성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_경향DB


전략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동안 남북 이산가족 상봉사를 뒤돌아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결과로 그해 8·15를 계기로 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서울에서 치러졌다. 2차는 평양에서 3차는 다시 서울에서 열린 뒤 4차부터는 금강산에서 열렸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김대중 정부 시기에 5회,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11회 열렸다. 반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기엔 2회(이번 10·20~26 포함)에 불과하다.

이 횟수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산가족 상봉이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활성화되지 않고 전반적인 남북관계의 일환으로 성사되고 활성화되었음을 보여준다. 바꿔 말하면 남한 정부와 민간 차원의 대북 인도적 지원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남북경협이 활성화되어 나가는 과정에서 북한도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적극적으로 호응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산가족 문제가 우리에게는 인도주의 문제지만 북한에는 체제 부담이 큰 정치 문제다. 이 때문에 대북지원을 불허하고 대북제재를 선도하는 정부 시기에는 속된 말로 남는 것도 없이 북한이 이산가족 사업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도주의를 명분으로 북한에 이산가족 상봉 사업에 협조하라고 촉구했다.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금년 내에 6만명의 이산가족 생사 확인을 끝내겠다는 포부까지 밝혔다. 박 대통령이 진심으로 이런 일을 하고자 한다면, 우선 이번 10월 이산가족 상봉 행사부터 순탄하게 치러지도록 여건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 2013년 9월처럼 북한이 갑자기 상봉 행사를 무산시킬 만한 구실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나아가서 내년 설 상봉 행사와 6만명 생사 확인, 고향 방문도 성사시키고 싶으면 지금까지처럼 남북관계를 대결적 분위기로 끌고 가서는 안 된다. 우선 전단 살포 문제와 5·24조치 문제에 대한 원칙적 입장부터 밝히고 남북관계를 화해와 공존, 교류와 협력 방향으로 모드 자체를 바꿔야 한다. 그래야 이산가족 사업도 성공한다.


황재옥|평화협력원 부원장·원광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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