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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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안보 도그마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6. 3.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 당시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한국도 이스라엘처럼 되어야 한다는 주장들을 쏟아냈었다. 언뜻 듣기에는 적대적 아랍 국가들로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당당하게 독립을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필요하다면 군사행동도 주저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안보관이 부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은 일촉즉발의 전쟁 상황이나 다름없는 긴장과 불안의 연속이다. 굳건한 안보의 중요성은 두말이 필요 없지만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모델로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가 우선해야 할 목표는 한반도 긴장해소와 평화 정착이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스라엘군의 ‘아이언 돔’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AP연합)


지난 수개월간 지속된 한반도 위기상황으로 인해 다시 강경한 안보담론이 득세하는 반면 평화담론은 약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반복되는 위기상황은 정전체제 60년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60년 한·미동맹의 공고함만 강조되고 있고, 이는 정상회담에서도 그대로 반영됐다. 탈냉전이 도래한 지 20년이 훨씬 지났음에도 남북분단과 동북아의 전략적 환경은 냉전잔재에 지속적 연료를 공급하고 있다. 평화 및 통일담론이 힘을 얻어 지평을 넓히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관성처럼 안보지상주의는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해왔다. 특히 최근 국제정치에 국내정치적 변수가 끼치는 영향이 두드러지고 있고, 동북아 6개국에서 공히 정권교체 또는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강경한 대외정책을 국내정치적 자산으로 이용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지는 것도 안보도그마를 부추기고 평화담론을 위축시킨다.


현재의 악화된 남북관계는 책임론의 소재를 떠나서 냉전대결의 부활이며, 적대적 분단질서의 재건이다. 이런 구도를 단절하지 못한다면, 민족의 미래는 또다시 남북한 기득권의 인질이, 그리고 국제정치적으로는 강대국 간 패권경쟁의 인질이 될 수밖에 없다. 강경책으로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국내 보수층을 결집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국익에는 오히려 독이 된다. 국력차이가 40배 이상이 앞서는 한국이 북한과 치킨게임을 해서 얻을 것보다는 잃을 것이 훨씬 더 많다. 한반도 갈등구조가 미·중 갈등과 합쳐지면 동북아를 신냉전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될 경우 우리의 운신 폭은 지금보다 훨씬 좁아진다.


테러와의 전쟁 (경향DB)


이런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 국방대학연설을 통해 밝힌 대외정책변화 선언이 눈길을 끈다. 9·11 사태 이후 10년 이상 미국 대외정책의 중심축이었던 ‘테러와의 전쟁’ 기조의 변화를 공식선언한 것이다. 완전 폐기는 아니지만, 규모를 축소하고 더 이상 미국외교 및 국방정책의 전력을 테러방어에 쏟지 않겠다는 것이다. 모든 전쟁은 끝이 있어야 하고, 적을 100% 섬멸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 수준의 안전 확보에서 노선변경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예상대로 공화당을 비롯한 미국의 보수세력은 그동안 오바마를 순진한 낭만주의자이자 유화주의자라고 비난하던 그대로 맹폭을 가하고 있다. 그가 안보담론의 공세를 어떻게 돌파할지 두고 볼 일이다.


그래도 평화를 말하면 한반도 분단과 긴장의 냉혹한 현실을 망각하는 안보불감으로 지탄받고, 종북좌파로까지 오해받는 안보 도그마 상태인 우리보다는 낫다. 강경한 대외정책과 안보담론이 거의 모든 정부당국자들의 인식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긴장해소를 위한 대화가 굴복으로 비치고, 북한을 따끔하게 가르쳐 뜯어고치고 말겠다는 자존심 대결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실익은 거의 없다. 힘에 부치는 것이 사실이지만,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깝다는 소망을 품고 평화담론의 공간을 넓혀나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때다. 조지프 나이의 말처럼 평화는 우리들이 숨 쉬는 공기와도 같다.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모르지만, 없어지면 모두가 죽음의 고통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김준형 |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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