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비행기와 낙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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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여적]비행기와 낙뢰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5. 7.

그리스 신화의 외눈박이 키클로페스 삼형제는 어둠에 갇혀 있다 제우스 도움으로 풀려난다. 대장장이인 삼형제는 보답으로 제우스에게 무기를 만들어 준다. 아르게스는 번개, 브론테스는 천둥, 스테로페스는 벼락을 만들었다. 막강한 힘을 갖게 된 제우스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우주의 새 주인으로 등극한다.


실제 번개의 위력은 무시무시하다. 전압은 10억볼트, 전류는 5만암페어, 발생 열은 태양의 5배나 되는 2만~3만도에 달한다. 지구상에는 하루 500만회 넘게 낙뢰가 떨어진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번개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는 숙명이다.


나치 독일의 자랑거리였던 비행선도 번개에 꺾였다. 1937년 ‘힌덴부르크호’가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미국 뉴저지주 비행장에 착륙하려던 순간 갑자기 내리친 낙뢰 감전으로 연료탱크가 폭발해 추락했다. 승객과 승무원 35명이 숨진 이 사고로 비행선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항공기는 동체가 전도성 좋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낙뢰의 위험에서 크게 벗어났으나 ‘완전’하지는 않았다. 1963년 12월 미국 메릴랜드 상공을 날고 있던 팬암 214 여객기 날개를 번개가 직접 때려 날개 하단의 연료탱크에 불이 붙었다. 조종사는 다급하게 ‘메이데이’를 외쳤지만 항공기는 이내 추락했고 81명의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다.


이 사고로 미국 연방항공청은 미국 상공을 운항하는 민간항공기에 낙뢰사고를 방지하는 ‘방전장치’(static discharger) 부착을 의무화했다. 지금은 세계의 모든 민항기에 방전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번개의 고압전류는 날개와 꼬리 등에 설치된 방전장치를 통해 밖으로 배출된다. 방전장치가 피뢰침 역할을 하기에 날벼락이 떨어져도 항공기는 무사한 것이다.


러시아 모스크바 국제공항에서 5일 국내선 여객기가 비상착륙 과정에서 기체에 화재가 발생해 41명이 숨지는 참사가 났다. 현지 언론은 “기체에 대한 번개 타격”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이륙 직후 낙뢰를 맞고 급히 회항해 비상착륙을 하다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안타깝다. 과학기술에 힘입어 아무리 대비를 하더라도 자연의 습격은 어쩌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번개쯤’은 하고 무리한 운항을 한 인간의 오만의 대가일까.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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