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근 칼럼]아베로부터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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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이대근 칼럼]아베로부터의 교훈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7. 10.

위기가 항상 도둑처럼 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위기는 느리고 긴 걸음으로 온다. 일본의 무역보복 조치로 부각된 한·일관계 위기가 그렇다. 이 위기는 무역보복이라는 하나의 사건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오래된 위기다. 지난 7년 동안 그것은 한·일관계에 깊고 넓게 퍼져 있던 보편적 현상이었다. 


2012년 대법원은 일본 기업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역사적 판결을 했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징용 문제가 종결됐다는 한·일 정부 입장과 배치되는 결정이다. 당연히 정부는 수용할 수 없다는 일본과 해결책을 모색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한·일관계 위기의 시작이다. 정당, 언론, 지식인도 뒤늦은 역사적 정의의 실현이라는 의미에 초점을 맞출 뿐 곧 닥칠 난관은 무시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더 나아갔다. 대통령 최초 독도 방문, 일왕 사죄 발언과 같은 반일공세로 일본을 자극하고 갈등을 조장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6일 오사카 상점가에서 참의원 선거 지원 활동을 하며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교도 _ 연합뉴스


이후 아무런 대책 없이 5년이 흘러 2017년 대선 국면을 맞았다. 여야,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모든 후보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를 공약했다. 합의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국가 간 합의를 깰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있느냐는 성찰은 없었다. 선거 상황에서의 약속이 국가 통치를 책임지는 무게를 감당할 수 없다는 걸 안다면, 집권 후 합의 파기에 신중해야 했다. 문재인 정부는 그러지 않았다. 아마 다른 정당이 집권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과거사에 관한 한 최대주의가 선이다. 대소 경중 선후 완급이 없다. 강경 입장만이 정치적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합의 폐기에 관해 정부와 시민사회 간 이견도 거의 없었다. 아니, 누가 더 단호한지를 두고 경쟁했다. 위기는 지속됐다. 


이렇게 6년을 허송세월하는 사이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일본 기업이 제기한 재상고에서 2012년 판결을 최종 확인했다. 법원은 위자료 확보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막다른 길이다. 이명박 정부는 박근혜 정부에, 박근혜 정부는 문재인 정부에 숙제를 떠넘긴 결과다. 사법부 결정 존중과 54년간 한·일관계 기초였던 한일협정 사이에서 묘수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다. 피해자 중심의 접근도 버릴 수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일본과 막전막후 협력해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소극적이었고, 8개월이 그냥 지나갔다. 그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잘 안다. 


위안부 합의로 설립된 화해·치유재단 해산 방침 발표, 한·일 레이더 조사(照射) 및 초계기 갈등, 문희상 국회의장의 일왕 사죄 발언, 세계무역기구(WTO)의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금지 관련 한국 승소, 일본의 징용 문제를 위한 중재위원회 개최 요구와 한국의 불응, 한국의 양국 기업 공동 기금에 의한 징용 피해자 위자료 지급 제안과 일본의 거부. 양국 간 불화 위에 불화가 차곡차곡 쌓였다. 일본의 관점에서는 좋은 소식이 하나도 없는 시간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한국은 합의를 깨고 국제법을 무시하고, 일본을 모욕하고, 이유 없이 도발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아베 신조는, ‘한국과 개별 현안을 논해봤자 소용없다, 한국인이 일본의 힘을 깨닫는 것이 우선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게 정경분리, 즉 하나의 갈등이 다른 갈등으로 번지지 않도록 쳐둔 칸막이를 제거, 한국에 투사할 힘을 키운 이유일 것이다. 이런 전략이 아니더라도 전후 체제 탈각을 내세운 아베의 역사수정주의 자체가 문제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베의 도발로 우리가 성찰할 기회를 잃으면 안된다. 그에게 책임을 묻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에게 과거사에 기반한 반일 애국주의, 민족주의적 열정의 과잉은 없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그것이 미래로 나아가려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면 더 말할 나위 없다. 욱일기 시비만 해도 그렇다. 지난해 10월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은 한국이 자위대기인 욱일기 게양을 반대해 제주 국제관함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한국인들이 욱일기를 전범기로 인식하고 있지만 해상자위대는 1998년, 2008년 한국에서 열린 국제관함식에 욱일기를 달고도 아무런 시비 없이 참석했다. 


일본 건국 설화를 형상화한 욱일기는 ‘빛나는 아침의 태양’(朝日·아사히)을 상징하는 것으로 일본의 문화적 전통에 속한다. 진보적 언론 아사히신문이 1800년대부터 사용하고 있는 로고도 욱일 문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한·일관계 위기가 지속된 7년 우리 안에 민족주의가 팽창했다. 그런 열정과 욕망은 일본과의 협력은 부끄러운 일로, 갈등은 정치적으로 인기 있는 일로 만들었다. 이런 조건에서 한·일관계의 발전은 없다. 아베의 지나침에서 우리의 지나침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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