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북핵 문제와 우리가 놓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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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정동칼럼]북핵 문제와 우리가 놓치는 것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2. 25.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목전이지만 기대만큼 성과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국제사회는 30년 넘게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강압적인 방법 중 아직 사용하지 않은 것은 군사작전밖에 없다.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사용 불가능하다. 미국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 스스로 세계패권을 상실할 수도 있다. 훌륭한 전략가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전쟁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원칙이다. 목표의 원칙이 가장 중요하다. 미국 입장에서 봤을 때 베트남전은 목표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해 패배한 대표적인 전쟁이다. 목표는 달성 가능해야 하며 분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자신의 능력을 초과하지 않아야 하며 둘째, 상대의 의지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 전쟁이란 나의 의지를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행위이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의지이다. 상대의 의지에 따라 투입하는 노력과 자산도 달라진다.  

 

23일 평양역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릴 제2차 북미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전용열차에 올라 환송객들에게 손은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핵 폐기를 위한 그간 노력의 성과가 미미했던 것은, 강압적인 제재가 불충분해서가 아니라 북한의 핵보유 의지가 더 강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황은 북한의 의지를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보고 싶은 대로 보려 한 결과라고 할 것이다. 

 

우리는 북한이 남한에 흡수통일되지 않기 위해 핵을 개발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 평가는 절반만 맞다. 중요한 것은 냉전종식 이후 변화한 안보상황이다. 냉전종식 이후 중국은 무슨 일만 있으면 북·중 국경지역에 수십만의 군대를 배치했다. 동북아공정은 유사시 북한을 직접 점령하여 완충지역을 확보하고자 하는 중국의 지정학적 고려일 수도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도 가능한 사안이다.

 

6·25전쟁에서 중국이 북한을 구원해 주었기 때문에 북·중관계가 한국과 미국 같은 동맹관계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난 수천년간 한반도와 중국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소치이다. 6·25전쟁이 북·중관계를 강화했다면, 냉전종식은 북한이 중국의 위협을 재인식한 계기일 수도 있다. 지금 북핵으로 가장 큰 위협을 당하고 있는 국가가 중국이라면 지나친 억측일까?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맨 앞)와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책략실장(오른쪽)이 21일 베트남 하노이의 정부 게스트하우스(영빈관)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중국으로부터의 안보위협을 우려하고 있다면, 완전한 북핵 문제 해결의 길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전가의 보도처럼 회자되는 한반도 평화체제도 북핵 문제 해결의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지금의 미·중 패권경쟁을 감안하자면, 한반도 평화체제가 오히려 동북아 평화를 위협할 수도 있다. 선북핵폐기 주장은 치기 어린 구호에 불과하다. 충분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한의 중국에 대한 우려 해소는 유감스럽게도 미국과 한국의 영역 너머에 있는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안보 우려 해소가 아니라 경제발전을 제시한 것은 북핵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인식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 미국이 과거와 다른 태도를 보이는 듯하다. 지금까지 미국은 완전한 북핵 폐기라는 이상주의적 입장이었다. 최근 들어 현실주의적으로 전환한 듯하다. 처음에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주장하다가, 얼마 전부터 ‘최종적이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FFVD)’를 요구했다. 표현의 차이가 있지만 모두 북한 핵을 완전하게 폐기하겠다는 의미다. 최근에는 완전한 비핵화의 중간단계로 ‘검증 가능한 핵봉인(CVC, Comprehensive Verifiable Capping)’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용어의 변화는 정책 전환의 전조일 경우가 많다.

 

과거는 미래를 강제한다. 주변안보상황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도 북한의 입장을 공고하게 만든 것 같다. 핵무기를 폐기한 국가들의 예를 살펴보자. 리비아와 우크라이나가 국제사회의 요구와 약속에 따라 핵을 폐기했다. 핵폐기를 결정한 카다피는 내전의 혼란 속에서 비명횡사했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공격을 받아 영토를 상실했다. 리비아와 우크라이나의 예에서 북한은 강대국의 약속이 얼마나 무망한지를 보았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말만 믿고 핵을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면, 그들의 지적 수준을 의심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논의되고 있다는 비핵화로드맵도 결국 시간을 끄는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도, 강력한 제재도 해결책이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가장 현실적인 것이 가장 이성적이기 때문이다.

 

<한설 예비역 육군준장·순천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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