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제국의 DNA, 식민지 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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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정동칼럼]제국의 DNA, 식민지 DNA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1. 23.

한국에는 터키 문화원이 없고 이스탄불 문화원이 있다. 이스탄불 문화원은 국가에서 내보낸 문화원이 아니라 터키에서 기부금을 모아 운영하는 민간단체이다. 이스탄불 문화원이 민간단체이지만 한국을 방문하는 터키의 유력정치인은 모두 여기를 방문하여 터키 교민사회와 교류를 하고 이스탄불 문화원에 힘을 실어주고 간다. 몇 년 전 우연한 기회에 이 단체와 인연을 맺게 되어 이스탄불 문화원의 활동과 운영을 관찰할 기회가 제법 있었는데, 본국의 기부금으로 운영된다는 민간단체가 하는 일이 보통 스케일이 크고 조직적인 게 아니다.


인맥 구축도 여간해서는 만나기 어려운 높은 분들에서부터 일반 시민까지 정말 막강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고, 행사를 열 때도 한국에서 구축한 막강한 인맥을 동원하여 조직적으로 준비를 해 나간다. 터키가 보유한 매력적인 문화자산을 유감없이 활용하여 친터키 인사의 규모를 넓혀가고, 이슬람 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설득력 있게 지워나간다. 여기에 관여하고 있는 주한 터키인들의 한국어 실력은 모두 놀라울 정도로 유창하다. 아주 편하게 대화할 수 있어서 쉽게 친해질 수 있다.


이렇게 이스탄불 문화원을 장황하게 소개한 이유는 이 문화원을 선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 광대한 오스만 터키 제국을 운영해 본 터키의 제국 DNA를 말하기 위해서이다. 터키의 기부문화는 다른 비슷한 경제규모의 국가보다 훨씬 활발하다. 인구의 99%가 이슬람을 믿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다른 이슬람 국가와는 차별화되는 기부 문화다. 그리고 그 기부금들이 다양한 시민단체로 가는데, 이들 중 많은 시민단체들이 터키와 터키의 가치를 세계에 전파하는 활동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 한국의 이스탄불 문화원이 바로 그러한 전형적인 예이다. 이러한 것들은 과거 수백년에 걸쳐 광대한 이슬람 제국을 운영했던 제국의 DNA가 터키 안에 살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서울 동교동 이스탄불 문화원에서 마련한 터키어 강의가 한창인 모습(출처 :경향DB)


우리 대한민국은 제국 운영의 경험을 가진 국가들로 둘러싸여 있다. 지금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하는 중국과 일본 모두 제국을 건설했던 국가들이고 전 세계에 동맹네트워크를 건설하고, 라틴아메리카에 앞마당을 만들어 놓은 미국은 현대의 세련된 제국이다. 러시아도 소련이라는 커다란 제국을 운영하였다가 냉전에서 패배하면서 제국 해체의 길을 걸었다. 이러한 제국 경험을 가진 나라들은 외교에서 제국의 DNA가 알게 모르게 작동한다.


과거 일본 제국은 국가와 재벌기업, 그리고 학자들이 식민지 건설에 체계적으로 공조한 사례인데, 대동아 공영권과 같은 제국의 비전이 나오고, 국가와 재벌기업, 언론과 학계, 관계가 공조하여 제국 건설과 운영의 소프트웨어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일본제국의 DNA는 아직도 살아 있어 대기업이 조용하게 후원하는 재단에서 관과 학이 일본의 비전과 일본의 가치를 체계적으로 알리고 있으며, 선진국에서는 이미 많은 일본의 지지세력을 확보하고 있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다보스 포럼에도 일본은 대기업과 학자들, 의원, 관이 체계적으로 대응하여 상당한 영향력을 구축하였다. 이러한 제국의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어도 일본이라는 제국은 살아 있다. 아베 총리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자신감을 갖는 이유 중의 하나다.


중국은 과거 일본과는 다른 유형의 제국을 운영하였는데 이는 국가가 중심이 되어 주변 속국들을 얌전하게 만드는 제국 운영이다. 자본주의 시대의 제국인 일본과 달리 중국은 봉건주의 시대의 제국이었기 때문에 제국 운영이 대기업이 아닌 국가를 중심으로 훨씬 정치적인 방식에 의해서 행해진다. 그러한 제국의 DNA 역시 아직 살아 있어 중국은 공산당이 중심이 되어 주변국들을 정치적·경제적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지금 중국과 일본, 미국은 동북아시아를 크게 흔들고 있는데 이들은 제국의 DNA와 함께 움직일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한국에서 일어나는 교과서 논쟁이나 한·미전시작전권 반환 논쟁, 그리고 친일파, 친미파, 친중파, 종북 논쟁 등을 보면 한국은 아직도 식민지 DNA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느낌이다. 제국의 마인드를 가진 국가를 상대할 때 우리가 식민지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면 쉽게 그들의 먹잇감이 될 것이다.


이근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싱크탱크 미래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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