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하노이 이후, 북·미 협상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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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정동칼럼]하노이 이후, 북·미 협상의 한계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3. 25.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혼란스러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어떤 이유로 회담이 결렬되었는지도 불명확하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했다. 북한은 사생결단도 마다하지 않을 태세다. 미국이 입장을 누그러뜨렸지만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 일촉즉발의 상황은 여전하다. 마치 제3자처럼 바라보기만 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 입장에 대해서는 일종의 무력감도 느낀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까?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해답은 문제에서 나온다. 문제의 출발점부터 보자. 회담 시작과 회담 결렬 모두 미국의 결정이었다.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정도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첫째, 대북 강경파인 백악관 안보보좌관 볼턴이 회담 마지막 날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과 관련된 자료를 들이대며 일괄폐기를 요구했으나, 북한의 거부로 회담이 결렬되었다는 것이다.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해왔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를 모르고 회담을 추진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볼턴의 개인적 행동으로 회담이 결렬되었다면, 이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쿠데타나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그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볼턴의 행동으로 회담이 결렬된 것이 아니라, 회담 결렬을 위해 볼턴이 행동했을 뿐이다. 


베트남 하노이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미국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둘째, 북한의 핵포기 의사가 확실치 않다는 주장이다. 북핵 문제를 들여다본 사람 중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다는 이야기가 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북한은 자신들의 핵능력을 기정사실화하고 제재를 풀려고 했을 뿐이다. 미국도 북한의 속내를 다 알고 있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서 회담을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의 핵능력이 무작정 확대되는 것을 방치하는 것보다 어떤 식으로든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셋째, 비건 대표는 영변핵 폐기의 범위가 정해지지도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회담 결렬과 관계없는 실무회담 실패의 고백일 뿐이다. 만일 미국이 위의 세 가지를 심각하게 고려했다면, 회담 자체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 아무리 북한이 세습독재국가라고 하더라도 정상회담장에서 실무회담에서 논의조차되지 않은 것을 들이대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이럴 것 같으면 회담을 할 필요가 없다고 북한이 볼멘소리하는 것도 이유 없는 것이 아니다.

 

상기한 세 가지 모두 회담 결렬의 직접적인 이유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이미 북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지적처럼 미국 내 정치적 상황이다. 코언 변호사의 상원청문회가 열리는 상황에서, 2차 북·미 회담 합의가 정치적 역풍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둘째,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술수일 가능성이다. 셋째, 미국이 일괄타결식 북핵 문제 해결방식으로 원점 회귀했을 가능성이다. 미국 내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면, 북한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강경한 입장의 민주당보다 현실주의자인 트럼프 대통령과 협상하기가 훨씬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자신의 의도를 짐작하기 어렵게 상반된 내용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회담이 결렬된 직후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일부 중지와 함께 한국 정부의 중재역할을 기대한다고 했다. 반면 각종 전략자산을 배치하고 북한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도 감행했다. 추가 제재도 언급했다. 북한도 처음에는 대화의 중요성을 언급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강력한 대응으로 기울고 있다. 미국의 입장이 뭔지 분명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런 빈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든다.

 

회담 결렬 이후의 과정을 종합해보면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지금까지의 북·미 양자관계가 매우 불안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제 어떻게 상황이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튕겨 나갈지 모른다. 앞으로 북·미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비슷한 경우가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마다 죽어나는 것은 우리다. 미국편만 든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북한의 볼모가 되는 것도 한심한 일이다. 북핵 문제 당사자로서 우리의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양자보다는 3자가 훨씬 더 안정적이다. 당사자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지금처럼 계속해서 미국에 불신받고 북한에 무시당할 수밖에 없다. 최소한 남북 교류와 협력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가 외부의 간섭 없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과 북한 눈치만 보는 것도 지겹다. 이번 회담 결렬을 통해 우리가 단순한 메신저가 아니라 북핵 협상의 당사자여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한설 예비역 육군준장·순천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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