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한반도평화와 트럼폴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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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정동칼럼]한반도평화와 트럼폴로지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12. 28.

이제 곧 저물 2018년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원년으로 불릴 자격이 충분하다. 경제를 포함한 여러 난제로 인해 촛불정부의 지난 1년에 짙은 아쉬움이 남지만 2013년 초 시작되어 2017년에 정점을 찍었던 전쟁의 기운을 일단 걷어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업적이다. 이러한 역사적 전환을 대북 굴욕이나 ‘퍼주기’로 몰아가는 것은 저의가 의심스러운 반역사·반민족적 프레임이자, 번영도 행복도 평화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상식을 외면하는 것이다. 물론 전반기 연이은 놀라운 성공으로 한껏 고양된 기대가 후반기 난기류와 교착으로 인한 실망감과 피로감을 배가시켰다. 연내 김정은 답방, 연내 종전선언, 트럼프 1기 임기 내 비핵화 완성이라는 3개의 타임라인 중 2개가 무산됨에 따라 김정은 위원장이 약속한 3번째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커진다.

 

과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2019년에 비가역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최근 트럼프와 폼페이오가 한목소리로 내년 이른 시기에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주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방한해 대북 인도적 지원과 남북 철도연결 착공식을 제재 예외로 인정하며 화해의 신호를 보냈다. 그동안 북한이 미국의 거듭되는 실무회담 요청을 거부하면서 난처해진 미국의 선심 공세인 셈이다. 북한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이지만, 긍정적이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 용의까지 제시하면서 상응 조치를 요구했지만, 미국이 선 핵폐기 원칙론만 고집하는 것에 대한 반발로 만남을 거부하고 있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만 제외하고 북·미관계 개선을 바라는 사람은 미국 내에 없다고 여긴다. 미국이 고수하는 원칙과 비핵화라는 포괄적인 어젠다를 표방한 실무회담은 상호 신뢰회복이 아니라 일방적 양보를 요구하는 대북 압박용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여기에 응하는 것은 낭비라고 판단한다. 정상회담에서 담판을 짓거나, 아니면 실무회담에서 제재완화 또는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구체적인 회담만 원하는 것이다. 북한은 정상회담을 통한 해법이 1인 권력체제 성격과도 잘 맞고, 싱가포르에서 세계 최강국의 리더와 마주 앉았다는 기억으로 정상회담에 중독된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책임이 크다. 싱가포르회담 이후 실천을 위한 실무그룹으로 가면 전혀 다른 양상을 띠어왔기 때문이다.

 

반대로 미국은 실무회담 없이 2차 정상회담을 할 경우, 모호한 합의밖에 할 수 없었던 1차 회담의 재판이 될 것을 우려한다. 좁히기 어려운 차이를 해소할 수 있을까? 결국 김정은 위원장의 미국이 거절하기 어려울 정도의 양보와 트럼프의 과감한 제재완화 조치의 교환 여부가 관건이다. 미국에서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시쳇말로 트럼프 혼자서 하드캐리해왔다. 그런 그가 지금 침묵하고 있기에 실무진의 움직임에 힘이 실리지 않고, 북한이 그것을 알기 때문에 응대하지 않고, 이는 곧 미국 내 대북 불신을 키우는 악순환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내각 회의에서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워싱턴_AP연합뉴스

 

미국에서는 트럼프 등장 이후 ‘트럼폴로지(Trumpology)’라는 말이 유행해왔다. 트럼프가 역대 대통령 중에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모습이기에 연구대상이라는 의미의 용례가 가장 많다. ‘예측 불가의 리더십’을 지칭하기도 한다. 다른 예는 보통 사람들은 잘못된 행동을 하고 나서 후회하거나 사과를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오히려 더 키워서 원래의 잘못보다 더 후회할 일을 만드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조롱과 우려 정도에 머무르던 트럼폴로지가 극단을 향해 치닫고 있다. 시리아에서의 미군 철수와 이를 반대하던 매티스 국방장관의 항의성 사퇴로 미국 대외정책이 혼란에 휩싸였다. 트럼프의 타임프레임에는 항상 ‘현재’만 존재한다고 한다. 그 순간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을 좇기에 미래 계획이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존재하지 않는다. 트럼폴로지에 의존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어려운 이유다.

 

그러나 여기에는 우리가 최대한 공략할 지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트럼폴로지 자체에 내포된 일관성이다. 트럼프의 공약실천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역대급’인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그의 대선 공약을 들으면서 경악했었고 선거용이라고 자위했었지만, 보란 듯이 하나하나 실천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지금까지 트럼프는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던 북한 문제를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했고 여기까지 왔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바로 지금까지의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조심스러웠던 자세에서 탈피해 트럼폴로지의 자기충족적 일관성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쫄지 마, 대한민국!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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