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정책과 산아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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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특파원 칼럼

출산정책과 산아제한

by 경향글로벌칼럼 2021. 6. 2.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지금은 꽤 낯설게 들리지만 1980년대 한국에서 익숙하게 들을 수 있었던 말이다. 정부 가족계획 정책에 따라 1960년대에는 ‘세 자녀 갖기’, 70년대에는 ‘두 자녀 갖기’, 그리고 80년대에는 ‘한 자녀 갖기’ 운동이 대대적으로 펼쳐졌다. 산아제한 정책이다. 하지만 30여년 만에 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앞다퉈 다자녀 가정에 혜택을 주고 각종 출산 장려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얼마 전까지 이웃나라 중국에서는 출산 장려가 먼 나라 얘기처럼 비춰졌을 터다. 산아제한이 존재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14억 인구를 바탕으로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루며 세계 강국의 반열에 올랐다. 세계적으로 ‘인구 보너스’ 효과를 가장 톡톡히 누린 나라라 할 수 있다. 생산 가능 인구가 늘면서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는 인구 보너스 효과를 중국에서는 ‘인구 홍리(人口紅利)’라 부른다. 이런 인구 홍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한 건 2010년 제6차 인구 센서스를 전후한 시기다. 저출생·고령화 현상에 따라 인구 증가율이 둔화되고, 생산 가능 인구도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30년 넘게 고수해 온 한 자녀 정책을 폐지하고 2016년 두 자녀 정책을 전면 도입했다. 하지만 생산 가능 인구 비중 감소는 최근 발표된 제7차 인구 센서스에서 현실화됐다. 지난해 기준 중국의 15세 이상 65세 미만의 생산 가능 인구 비중은 68.55%로, 74.5%를 나타냈던 10년 전보다 6%포인트 가까이 낮아졌다. 이뿐만 아니라 10년 동안의 연평균 인구 증가율이 지속적으로 둔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인구 감소에 대한 위기감이 커졌다.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이 지난달 31일 세 자녀 허용 정책을 결정하며 1979년 처음 도입한 산아제한 정책을 사실상 폐지하는 수순에 들어간 건 이런 위기감에서 나온 불가피한 선택이다. 눈여겨볼 건 세 자녀 정책 발표 이후 나온 안팎의 반응이다. 세 자녀 정책은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인 ‘웨이보’에서 순식간에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하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셋은커녕 하나도 낳기 힘들다’는 게 상당수 반응이다. 중국 광저우에 사는 한 30대 남성은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산아제한 완화가 효과적일 거라 전혀 생각지 않는다”면서 “정부가 정말 아이를 낳도록 장려하려면 복지와 육아, 직장 내 여성 차별 같은 것을 먼저 개선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중국에서 여성 1명이 가임기간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합계출산율)는 이미 1.3명까지 떨어졌다. 지금에 와서 산아제한을 완화해 세 자녀를 허용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2018년 이미 합계출산율이 1명 미만으로 낮아진 한국 입장에서도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한국에서 두 아이를 키우던 시절 “셋째 낳을 생각이 없냐”는 질문을 받곤 했다. 언제나 대답은 “지금도 힘든데”였다. 집값, 교육비 부담에 노후 걱정까지 한꺼번에 머리를 스치며 나온 대답이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대부분 도시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비슷하다. 부동산, 교육 문제 등을 해결하고 전반적인 사회보장 수준을 높이지 않는 한 별도의 출산정책이라는 건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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