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은 어디로 가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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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특파원 칼럼

홍콩은 어디로 가고 있나

by 경향글로벌칼럼 2021. 5. 6.

“언론계에 몸담은 30여년 동안 지난해 상황은 최악이었고, 앞으로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다.” 크리스 융 홍콩기자협회장이 지난 3일 ‘세계 언론자유의날’을 맞아 언론자유지수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언론인 36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지난해 홍콩 언론자유지수는 32.1을 기록했다. 2013년 연례 조사가 시작된 이후 최저치다. 2019년 조사 때보다 4.1포인트 낮아졌고 2013년(42.0)과 비교하면 10포인트나 추락했다. 정보 접근성과 언론의 감시자 역할, 매체의 다양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점수다.

 

조사에 응답한 언론인 중 91%는 홍콩의 언론자유가 1년 전보다 더 악화됐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85%는 언론자유를 억압하는 근원이 홍콩 정부라고 봤다. 69%는 중국 정부 관리들이 ‘일국양제(한 나라 두 체제)’에 있어 ‘하나의 중국’을 강조함으로써 반대 의견을 보도하는 것을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40%는 선배들이 홍콩 독립에 관한 보도를 축소하거나 중단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은 정부를 비판할 때 망설이게 되고, 자유로운 정보 접근이 제한됐으며 취재 활동에 대한 안전장치도 축소됐다고 지적했다. 홍콩기자협회는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제정 이후 언론인이 기소되는 등 언론자유가 악화됐다”고 밝혔다.

 

계량화된 수치로 드러나지 않지만 홍콩인들이 느끼는 ‘자유의 축소’는 언론 영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닐 터다. 지난해 6월 시행된 홍콩보안법은 그 출발점이다. 법이 시행된 후 민주 인사들이 홍콩을 떠났고, 떠나지 못한 이들은 홍콩보안법의 족쇄에 묶여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중국 최고 입법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가 채택한 홍콩 입법회 의원 자격요건에 관한 결정을 근거로 홍콩 정부가 야당 의원 4명의 의원직을 박탈했다. 야당 의원 15명이 이에 항의해 모두 동반 사퇴하면서 홍콩 입법회에는 친중 성향 의원들만 남게 됐다. 모든 공무원에게는 충성서약이 의무화됐고, 이를 거부한 공무원 129명이 해고될 상황에 놓였다. 올해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는 홍콩 선거제 개편에 관한 결의안도 통과됐다. 행정장관 선거인단을 친중 인사에 유리하게 재편하고, ‘애국자가 다스린다’는 원칙에 따라 입법회 선거 등의 출마 자격을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선거제 개편이 완료되면 사회 통제를 강화하고, 행정·입법·언론 등을 장악하는 중국의 밑그림이 완성되는 셈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달 15일 홍콩에서 처음 진행된 ‘국가 안보교육의날’ 행사를 보도하며 “베이징이 홍콩을 완전히 장악했고, 이제 ‘세뇌’가 시작된다”면서 “홍콩보안법 시행 이후 자유롭고 활기가 넘치던 홍콩이 본토와 닮은 전체주의적인 지역으로 추락한 것을 보여주는 행사였다”고 했다. 세계 언론자유의날,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한 언론자유지수에서 홍콩은 80위를 차지했다. 2013년 58위에서 20계단 이상 하락했다. 국경없는기자회도 홍콩보안법을 기자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요소로 지목했다. 중국 언론자유지수는 180개국 중 177위였다.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은 50년간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하기로 하고 1997년 중국에 반환됐다. 하지만 20여년 만에 ‘중국식 통제사회’는 홍콩에 그대로 이식되고 있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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