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외교를 국민과 하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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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국제칼럼]외교를 국민과 하는 한국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11. 25.

동북아에서 세력재편이 속도를 내고 있다. 세계정치를 호령하던 미국의 기세가 꺾이고, 세계경제를 호령하던 일본이 20년 침체에도 반등의 기미가 없다. 반면 중국은 내외의 물음표 속에서도 꾸준히 부상하고 있다. 세력재편의 국제정치는 불안정을 만들고, 역내국들은 이에 대비해 한편에서는 군비증강에 나서고, 다른 한편에서는 짝짓기와 적 만들기의 외교전을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미국과 일본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침체를 겪는 동병상련과 더불어 수렴하는 전략적 계산은 중국을 반대편에 놓고 강력한 연대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은 재정위기를 빌미 삼아 동맹국들에 대한 부담전가를 노골화하는데, 일본은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 북한도 중국과 3차 핵실험 감행 이후 어려워졌던 관계를 개선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긴박함 속에서 정작 한국정부의 외교는 그 초점이 엉뚱하게도 국민들에게 쏠려 있는 것 같다. 새 정부를 출범시킨 역내국들은 일단 내부권력 강화에 신경 쓸 수밖에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고도의 전략적 마인드를 가지고 외교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북한과 일본이 얼마나 나쁜지, 미국과 유럽이 한국을 얼마나 높이 평가하는지 대국민 홍보에 집중한다. 이런 평가에 대해 혹자는 세계정상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회담을 하고, 일본에 대해 단호한 외교를 펼치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또한 DMZ 안의 평화공원 건설, 아시아패러독스를 극복하기 위해 동북아평화협력구상, 한반도와 유라시아를 관통하는 철도 건설 등 대형 제안들로 세계의 주목을 받지 않은가라고 반박할 것이다.

 

(경향DB)

물론 박근혜 대통령도 분명 외교행위를 하고는 있다. 그것도 매우 우아하고 폼 나게 하고 있다. 그러나 난제들과 씨름하면서 해결하려는 외교는 보이지 않고, 뒤로 미루거나 핵심에는 비켜 있다. ‘지정학적 저주’라는 표현이 적절할 만큼 어려운 한반도상황에서 그것도 허리가 잘린 채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급박한 세력재편은 뒷전이고 원하는 상대하고만 만나서 고담준론하고 있다. 지금까지 만난 정상들과 회담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하고 적극적으로 실익을 챙기려 애쓰는 외교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신뢰는 박근혜 정부 외교의 핵심키워드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국가 간 신뢰가 힘든 국제정치에서도 상대방을 설득해 국익을 실현하는 것이 진짜 외교임에도 이미 신뢰할 수 있는 편한 상대들만 골라서 만난다. 일본도 북한도 신뢰 못하니 상대가 변하거나 굴복하기 전에는 아예 만나지도 않겠다는 자세로 일관한다. 이는 스스로 외교무대에서 주요 행위자가 되기를 포기하는 외교의 부재상태에 가깝다. 기존의 우호관계를 다진다는 외교도 겉으로 나타나는 화려한 모습과는 달리 뒤로는 국익이 새고 있다. 한·미정상회담에서 동맹의 견고함을 재확인하고 우리의 지위가 격상되었다고 했지만 양국의 주요 현안인 무기판매나 원자력협정, 주둔분담금, MD 문제 등에서 발언권이 없다. 일본의 집단자위권에 대한 미국의 지지과정에 한국은 어떤 입장도 제기하지 못했고, 오히려 김장수 안보실장이 미국까지 가서 허용에 가까운 섣부른 발언을 했다. 한·중정상회담 직후 국내발표는 양국이 북핵불용에 인식을 같이했다고 했지만 중국은 부인했다. 게다가 한·중관계의 새로운 밀월이니 하면서도 우리는 북한에 대해 중국 카드를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데 반해, 오히려 북·중 공조는 되살아나고 있다.

우리의 미래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변수는 미·중관계다. 아베 정권은 일본의 위상 부활을 위해 미·중이 갈등구조로 가는 데 아예 촉매가 되기로 작정했다. 우리는 미·중 사이에서 난처해하면서도 미국만 바라보고 있다. 최악의 경우 편을 들고도 미국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중국으로부터 의심을 받는 것일 텐데 우리의 외교가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쉽지는 않겠지만 미·중 대결구조가 형성되어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만드는 외교를 해야 한다. 그런 외교를 해야 정말 잘하는 외교다. 우리가 아직 편을 확실히 가르지 않았다는 사실은 고래 사이의 새우처럼 불리한 일이기도 하지만, 잘 이용하면 입지가 오히려 커질 수 있다. 문제는 남북관계인데, 남북관계가 개선되어야 새우가 아니라 돌고래가 될 수 있다.

김준형 |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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