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폭력의 열기에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 올랜도에서 발생한 나이트클럽 집단 학살에 이어 프랑스에서는 경찰 부부를 암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영국에서는 40대 초반의 여성 국회의원 조 콕스를 살해한 사건이 터졌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비극적 현실 앞에서 추모의 시간은 잠시이고, 거의 곧바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투쟁은 시작된다.
올랜도 사건을 두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성적 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증오의 범죄임을 강조하면서 미국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집단 학살을 막기 위해 총기 규제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반면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대선 후보는 살인범이 아프가니스탄 이민 2세이며 급진적 이슬람의 전사라는 사실을 지적하며 평소와 마찬가지로 외국인 혐오증을 자극했다. 오바마와 트럼프가 각각 강조하는 현실은 모두 일리가 있다. 총기 규제와 급진적 이슬람의 통제는 둘 다 테러를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바마는 이번 기회에 총기 규제라는 미국이 오래 풀지 못한 숙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다. 반면 트럼프는 문제 해결보다는 유권자의 분노와 복수심에 불을 질러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수작이다.
프랑스에서 벌어진 경찰 부부 암살은 비상사태가 선포된 상황에서 국가안보의 상징인 경찰을 칼로 찔러 죽이고 세 살짜리 아이만 간신히 살아남은 사건이다. 범인은 경찰이 오래전부터 감시해 오던 20대 무슬림인데 프랑스 시민이며 2013년에 이미 테러 관련 사건으로 체포된 적이 있다. 범인에게서 발견된 쪽지에는 경찰뿐 아니라 기자, 가수 등 다수의 테러대상이 실명으로 적혀 있었다.
프랑스 경찰은 비상사태가 이미 6개월 이상 지속된 데다 유로 2016 축구대회로 가중된 업무 때문에 더 이상 일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고 불만의 목소리를 냈다. 우파의 정치 지도자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이슬람 급진주의를 주범으로 지목하고 나섰다. 극우 민족전선의 마린 르펜은 무능한 정부가 이슬람 세력을 방조한다고 비난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과 사회당 정부는 더욱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브렉시트(Brexit) 일지_경향DB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둔 영국에서도 국회의원 살해에 관한 심각한 논쟁이 벌어졌다. 영국 일각에서는 언론이 살인자의 범행을 극우의 테러라고 규정하지 않고 정신병자의 행동으로 몰아간다고 지적한다. 미국과 프랑스의 사건에서 범인은 해당국의 시민이었지만 이슬람 신도였고 IS라는 테러조직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따라서 사회와 여론은 곧바로 범죄를 테러 행위로 규정했다. 하지만 영국처럼 범인이 백인이면 테러리스트로 곧바로 평가하기를 망설인다는 비판이다. 이 논쟁은 브렉시트 국민투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왜냐하면 살해당한 콕스 의원은 영국이 유럽연합에 남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던 상징적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이 정치적 테러의 결과라면 브렉시트 반대 진영에 이로운 여론의 동정심과 흐름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30여년 동안 정치학을 공부해 온 필자는 매번 정치적 소용돌이의 광기 속에서 왜소하게 축소되는 진실에 항상 놀란다. 정치적 광기에 취하면 무조건 집단적 적을 만들어 책임을 뒤집어씌우며 문제의 복합성 보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신중한 사회학자들이 분석한 최근 테러의 특징은 사회에서 소외당한 극소수와 극단주의 세력의 만남이라는 점이다. 전자는 정신병 환자일 수도 있고 단순한 사회적 약자일 수도 있다. 이들은 어느 순간 자신의 목숨을 던져서라도 삶의 의미를 찾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증오를 밑천으로 삼는 극단주의를 골라 행동한다. 이 또한 경우에 따라 이슬람 극단주의, 극우 국수주의, 여성 혐오 등 다양하다. 살인과 죽음 속에서 잃어버린 삶의 의미를 되찾으려는 몸부림은 이들이 자신의 범죄를 SNS나 매스미디어를 통해 선전하기를 좋아한다는 특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조홍식 |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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