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식의 유럽 리포트]이민자 포용 없인 그들이 열광하는 축구도 없다
본문 바로가기
경향 국제칼럼

[정동식의 유럽 리포트]이민자 포용 없인 그들이 열광하는 축구도 없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6. 21.

요즘 유럽은 축구 광풍에 휩싸여 있다.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6)가 지난 10(현지시간) 프랑스에서 개막된 이래 온통 축구 이야기다. 일주일도 채 남겨두지 않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에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일반인들의 관심은 자국 대표팀의 동향과 경기에 더 쏠리고 있다.

 

1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북쪽지역 철로 아래 형성된 임시 천막촌에서 난민들이 보호소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짐을 싸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수단 등에서 온 400여명의 난민들은 이날 파리 근교에 있는 보호소 30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파리 _ AFP연합뉴스

이번 대회에서 복병으로 평가받는 벨기에는 첫 경기가 열린 프랑스 리옹까지 원정응원을 가는 팬들을 위해 태양을 찾아가는 길이라는 이름의 고속도로를 벨기에 감자튀김 길이라 명명하고 감자칩을 사 먹을 수 있는 휴게소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응원길에 나섰던 노인 1명이 리옹에 도착하기도 전에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카페나 식당들은 대형 텔레비전을 외부에 걸어놓고 생중계를 보여주고, 집과 가게에는 대형 국기가 넘쳐난다. 벨기에 팀 경기 시간에는 누구나 중계를 볼 수 있게 인터넷 사용을 무료로 개방한 통신사도 있다. 브뤼셀 근교 루벤대학에서는 학기말 시험 중에도 중계를 볼 학생들을 위해 푸드트럭을 임시로 배차, 스낵과 음료수를 판다.

 

본선에 오르지 못한 나라 사람들에겐 이런 열풍을 지켜보는 것이 고역이다. 전통적인 축구 강호이자 벨기에와 앙숙인 네덜란드는 이번 대회 예선에서 탈락했다. 벨기에 접경 지역에 위치한 네덜란드 카페 데페펠주인은 국경 표지판을 옮겨 대회 기간 동안 벨기에 영토에서 벨기에인으로 변신해 영업을 하고 있다.

 

이런 사례들은 훌리건 난동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대회가 시작되자마자 잉글랜드와 러시아 팬들이 쇠파이프와 도끼까지 들고 충돌하는 등 폭력사태가 그치지 않는다. 개막한 지 일주일 만에 300여명이 체포되고 20명이 추방당했다. 이번 대회가 이슬람국가(IS)의 유력한 테러 대상이라는 경고가 계속 나와도 팬들에겐 마이동풍이다.

 

그러나 16일 러시아와 슬로바키아의 경기가 열린 릴에서 자동차로 1시간 남짓 거리의 칼레에는 그 시간에도 1000여명의 난민들이 정글이라 불리는 난민촌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은 시리아나 아프가니스탄, 북아프리카 등에서 영국으로 가기 위해 수개월간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겨우 이곳에 도착했다. 그러나 영국은 국경을 봉쇄했고, 프랑스는 경찰을 동원해 난민촌을 철거하고 있다. 이들에게 유로 2016은 그야말로 사치다. 한달음이면 경기장에 갈 수 있지만 구경은커녕 언제 어디로 쫓겨날지 모르는 채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럼에도 이 부러운 땅으로 오기 위해 지금도 지중해의 어느 바다에서, 발칸 반도의 어느 국경에서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유럽 국가에 난민과 이민자 문제는 가장 민감한 정치문제다. 영국에서는 브렉시트를 촉발시켰고, 유럽 대륙에서는 극우주의자들의 발호를 부추기고 있다. 이들은 이민자를 막고 우리끼리 살자고 주장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축구대표팀은 이민자들이 없으면 지탱이 안될 정도다. 독일 대표팀은 8명이 이민자 출신이며 이 중 절반이 무슬림이다. 프랑스 대표팀도 4명이 무슬림이다. 스위스 대표팀은 더하다. 대표팀 23명 가운데 이민자 출신이 무려 14명이고 이 중 8명이 무슬림이다.

 

그럼에도 대회가 끝나면 안색이 바뀐다. 독일의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의 한 지도자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이민자 출신인 국가대표팀 수비수인 제롬 보아텡에 대해 그가 잘 싸워주기를 바라지만 이웃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프랑스가 1998년 자국 월드컵에서 우승했을 때 국민들은 열광했지만 극우정당들은 대표팀에 이민자 출신들이 있다는 이유로 진정한 프랑스 팀이 아니다라고 깎아내렸다.

 

문을 닫아걸면 당장은 편하고 안전할지 모른다. 그러나 주린 배를 움켜쥐고 조금이라도 더 자유를 얻기 위해 담장 밖에 서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부러움이 증오로 변하게 되면 결국은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되기 마련이다.

 

<브뤼셀 통신원·전 경향신문 기자>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