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식의 유럽 리포트]영국식 우월감에 EU 불신…“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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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정동식의 유럽 리포트]영국식 우월감에 EU 불신…“나가자”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6. 21.

전문가들은 탈퇴 뒤 일어날 충격에 대해 경고하지만,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여론조사 결과는 탈퇴 쪽에 힘이 실리는 형세다. 탈퇴 진영의 명분은 이민자 문제와 일자리 부족, EU의 규제로 인한 정체성 혼란, 사회적 갈등, 재정 악화, 테러 위협 등이다. 그러나 그 저변에는 영국인들이 갖고 있는 독특한 ‘생각의 차이’도 자리한다.

 

1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템스 강에서 유럽연합(EU) 잔류 지지자들이 대형 스피커로 잔류를 호소하는 노래와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왼쪽 사진). 반면 탈퇴 지지자는 웨스트민스터 다리 위에서 “어업을 위해 EU를 떠나자”는 팻말을 들고 시위를 했다. 이날 템스 강에서는 30여척의 배를 몰고 온 탈퇴파가 유명 싱어송라이터 밥 겔도프가 이끄는 잔류 시위대 보트에 물을 뿌리는 등 충돌이 벌어졌고 결국 경찰이 출동했다. 이 장면은 소셜미디어에서 ‘템스 강의 전투’로 불리며 화제를 모았다. 런던 _ AFP·AP연합뉴스


최근 벨기에 공영방송 VRT는 영국의 브렉시트(EU 탈퇴) 국민투표를 앞두고 벨기에 거주 영국인들의 의견을 수렴해 보도했다. 헨트에서 5년 넘게 살고 있는 게프 리는 이 방송에 “영국인과 유럽 대륙 사람의 주된 차이는 정치·경제적인 이슈보다 ‘다르게 생각한다’는 철학적 차이”라고 말했다. 대륙과 떨어져 섬나라에서 살아온 영국인들에겐 지난 몇 백 년 동안 최대의 관심사가 독립적인 국가의 존재였던 반면, 국경이 서로 연결된 유럽 대륙은 연대에 초점을 맞춰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 차이는 특히 ‘규제’를 둘러싸고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나라들이 모인 만큼 규칙을 세밀하게 정해놓고 엄격하게 적용해야만 시스템이 안전하게 작동한다고 EU는 생각한다. 그러나 영국인에게는 ‘쓸데없는 규제’로 비친다. EU의 전기주전자 규제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EU는 올 초 전기주전자처럼 전력 사용량이 많은 가전제품 사용을 규제하려 했으나 차(茶)를 즐기는 영국인들이 “그런 것까지 규제하느냐”며 강력 반발해 조치가 일시 유보됐다.


안트베르펜에서 7년째 살고 있는 존 그레이엄은 “영국에서는 의사를 찾아가 1주일이면 장애인용 주차권을 발급받는데, 벨기에에서는 병원, 시청, 정부의 확인 절차가 필요해 5개월이 걸린다”며 “EU를 불필요한 규제와 관료들의 사회주의적 집단으로 보는 게 영국인들의 시각”이라고 말했다. 영국이 유럽 다른 나라들보다 우월함에도 그만큼 대접을 못 받는다는 정서도 깔려 있다. 게프 리에 따르면 영국인들은 20세기 이후 한두 번 유럽 대륙을 위기에서 구해줬는데도 ‘선출되지도 않고 민주적이지도 않은 EU 제국’으로부터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벨기에에서 30년 넘게 살고 있는 빅 데이는 “몇 해 전 EU가 영국 해변들이 EU 환경기준에 못 미친다고 지적했을 때 영국인들은 ‘영국 해변이 오염됐을 리가 없다’며 EU를 비난했다”면서 “브렉시트 주장도 ‘탈퇴를 하면 다른 나라들과 더 나은 교역협상을 할 수 있다’는 식의 추측과 희망에 근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U에 대한 불신뿐 아니라, 영국 정치권과 기득권에 대한 불신도 평범한 유권자들이 탈퇴 주장에 솔깃하게 만든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5일(현지시간) 기존 체제를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탈퇴 표심을 부추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EU 탈퇴 운동을 하는 저스틴 벨하우스는 “어떤 이들에게는 이번 투표가 반체제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밝혔다. EU에서 나가지 않아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들, 이들을 뒷받침해주는 기업체와 금융기관과 연구기관들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집단이 됐다는 것이다.

리사 매킨지 런던정치경제대학 교수는 가디언 기고에서 “영국인들은 전혀 바뀌지 않는 정치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EU 탈퇴 의견을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총선에서 “누구를 뽑으나 정치인들은 다 똑같다”며 관심을 보이지 않던 노동자층이 브렉시트 국민투표로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고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인들이 강하게 주장할수록 역효과가 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개혁센터의 찰스 그랜트 책임자는 “기득권이 ‘이것을 위해 투표해, 우리는 너희를 위해 무엇이 좋은지 알아’라고 해봤자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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