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 페이퍼스’의 공개로 세계의 부와 권력을 주무르는 자들이 곤란한 지경에 빠졌다. 법망이 허술한 해외 국가에 유령 회사를 차려놓고 은밀하게 자금을 굴리면서 절세와 탈세의 마법을 부리던 부자들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국의 수준에 따라 이들의 운명은 천차만별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파나마 페이퍼스’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_연합뉴스 유럽에서 예외적으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현금 거래에 대한 규제가 없다. 그렇지만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는 전 국민의 소득세 내역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있다. 국가의 지도층이나 재벌뿐 아니라 친척과 친구와 이웃의 소득세 내역을 누구나 들여다볼 수 있는 투명성의 천국이다. 2001년 이 조치가 시행되자 당장 사업자의 소득신고가 3% 증가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모든 시민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외치는 듯한 사회다.
민주주의 잣대가 엄격한 아이슬란드의 총리는 하야했다. 민주주의 고향 영국의 캐머런 총리는 지난 6년간의 소득세 내역을 상세하게 공개해야 했다. 이어 야당 지도자와 주요 각료, 런던 시장 등이 모두 소득세 내역을 공개했다. 영국 정치에 투명성의 바람이 일어난 것이다.
반면 러시아의 푸틴이나 중국의 시진핑은 이 모든 소란이 미국의 음모라고 폄훼하며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이번 사건의 ‘교훈(?)’은 지도층의 부정부패는 보편적이지만 사회의 반응은 차별적이라는 사실이다. 선진국일수록 지도층에 대한 윤리적 잣대는 높고 부정부패의 규모는 작으며 책임을 확실하게 묻는다. 일례로 캐머런은 자신의 부친이 해외 회사를 차린 목적이 탈세가 아니었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자진해서 소득세 내역을 공개한 것이다. 반대로 후진국일수록 지도층의 부패는 천문학적 규모이고 밝혀지더라도 책임지지 않으며 곧바로 은폐된다.
선진사회란 책임의 정치를 실현하는 민주주의 사회다. 그 때문에 개방과 투명성을 사회의 근본으로 삼는다. 특히 투명성은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가장 기초적인 원칙이다. 나는 지난 2월29일자 국제칼럼에서 유럽 선진국들이 현금 거래의 합법적 기준을 낮춰 투명성을 제고하려는 노력을 소개한 바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수백만원 이상의 현찰 거래는 불법이다. 검은돈의 유통이나 자금 세탁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현금 사용을 법적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또 이탈리아는 부동산과 관련된 모든 현금 거래를 금지하였다. 탈세를 막기 위해서다.
현금 거래에 대한 통제나 소득 공개, 목표는 건전한 사회 만들기의 하나다. 한국도 개발도상국의 티를 벗고 선진국의 대열에 동참하려면 투명성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 최근 한국에서 급부상하는 사회질서에 대한 근본적 불신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투명성의 확립은 필수적이다.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만의 별세상이 존재하며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생각은 사회를 뿌리째 썩게 한다. 또한 점차 심화되는 사회불평등을 완화하고 복지사회로 가기 위해서도 게임규칙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특히 복지사회를 위한 증세는 앞으로 필수적인데, 징세의 공정성에 대한 믿음 없이 증세는 불가능하다. 끝으로 투명한 사회를 이룩하는 데 성공하면 해당 국가의 국제적 명성을 높임으로써 해외 자본을 끌어들이고 일자리를 만드는 데도 크게 기여한다.
조홍식 |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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