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화의 문 연 남북, 신뢰·화해의 시대로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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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사설]대화의 문 연 남북, 신뢰·화해의 시대로 가야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8. 25.

 남북이 판문점에서 고위급접촉을 시작한 지 나흘째인 어제 새벽 6개항에 합의하고, 공동보도문을 통해 이를 발표했다. 합의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지뢰 도발에 대한 북한의 사과는 유감을 표명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남측은 첫 조치로 어제 정오부터 모든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고 북측은 준전시상태의 수위를 낮췄다. 또한 남북은 올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다음달 초 적십자 실무접촉을 갖기로 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당국회담도 개최하기로 합의했는데, 통일부는 당국회담의 정례화를 약속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지뢰 도발 이후 일촉즉발의 충돌 위기로 치닫던 군사적 긴장은 당분간 해소되고, 이산가족 상봉과 당국회담 등이 재개되는 등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으로 남북대화 시대가 열리게 됐다.

이번 합의에 논란거리가 없지 않다. 당장 북한이 사과가 아닌 유감 표명을 하고, 지뢰 도발을 했다고 시인하는 표현이 합의문에 없는 것이 집중 비판을 받고 있다. 북측의 사과 수준은 과거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게 사실이다. 유감 표명의 주체를 북한이라고 명시하기는 했지만, 북한이 지뢰를 매설했다는 표현과 그에 따른 책임 소재에 대한 언급이 없다. 재발 방지에 대한 약속도 명시돼 있지 않다. 하지만 북한은 연평해전이나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때도 비공식적으로 유감 표명을 했을 뿐 책임이 있다고 밝히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더구나 북한이 이번 지뢰 도발을 부인하며 남측의 조작극이라고 주장해온 점에 비춰보면 합의문에 유감 표명의 주체로 북한을 명기한 것 자체가 책임성이 좀 더 담긴 표현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북측 대표인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합의 후 북한 TV를 통해 지뢰 도발을 우회적으로 부인하는 듯한 말을 했지만 이는 북한 내부용이다.

남북고위급접촉협상타결보고받는야당 _연합뉴스


남측이 합의 과정에서 북한의 분명한 사과라는 명분에 얽매이지 않고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대의를 선택한 것은 의미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반드시 북한의 사과를 받아내겠다는 방침을 어기고 합의해줬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는 협상의 현실적 측면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상대방이 있는 협상에서 내 몫만 챙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북한 역시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이라는 성과물을 가져가면서 남측이 요구해온 이산가족 상봉 등을 수용했다. 남북은 원칙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성을 보이며 합의를 일군 이번 접촉의 정신을 향후 회담에서도 이어가기 바란다.

하지만 본격적인 대화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이번 고위급접촉은 군사 충돌 위험을 해소하기 위해 급조된 대화의 장이었다. 남북이 관계 개선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오랫동안 준비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남북이 급히 만나 서로 필요로 하는 것을 얻었기 때문에 추가적인 대화의 동기는 매우 약하다. 더구나 남북관계는 이명박 정부 때부터 악화일로를 걸어 당국 간 적대감과 불신이 최고조로 팽배한 상황이다. 남북의 이 같은 여러 상황을 감안할 때 회담을 통한 굵직한 현안 타결보다는 우선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하면서 신뢰를 쌓아나가는 작업이 더 필요하다. 섣불리 성과를 내려고 서두르다가는 자칫 남북관계의 안정적 발전은커녕 대화 유지도 힘들 수 있다. 다음달 열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당국회담은 향후 남북관계의 진전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 같다. 정부는 두 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박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이번 고위급접촉 때 실시간으로 상황을 챙기며 ‘간접 대화’를 했다. 최고지도자들이 비록 간접적이지만 양보와 타협을 통해 합의를 일군 경험은 중요한 남북관계 자산이 될 수 있다. 두 최고지도자가 이를 토대로 불신과 대결의 남북관계를 신뢰와 화해의 시대로 이끌어 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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