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핵무기 없는 세상과 평화의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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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기고]핵무기 없는 세상과 평화의 동아시아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5. 30.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이 원자폭탄 피해 지역을 71년 만에 처음 방문했다. 그는 “원폭으로 목숨을 잃은 10만명 이상의 일본인과 수천명의 한국인, 10여명의 미국인 포로들을 애도한다”고 히로시마 방문 연설했다. 일본인들은 마치 미국 대통령이 사죄라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반응이다.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했던 쪽에서 피해 현장을 방문해 헌화한 일은 외견상 미국과 일본 사이에 ‘화해의 동맹’을 만들었다. 그러나 조금만 그 방문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아쉽고 안타까운 장면이 금방 드러난다.

미 대통령은 “전쟁에서 숨진 모든 무고한 희생자를 기억하기 위해” 갔지만 일본인뿐만 아니라 한국인(당시 조선인)들의 희생자 규모조차 대폭 축소함으로써 그의 지식이나 상식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1945년 8월6일 오전 8시15분에 히로시마에 투하된 미제 원자폭탄에 의해 죽은 일본인과 조선인은 오바마의 소감에서 말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미 에너지부는 투하 당일 즉사 7만명, 1945년 말까지 9만명에서 16만6000명이 사망했다고 추산했다. 1950년 피폭 사망자까지 2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인 희생자 규모는 수천명이 아니라 수만명이 된다.

당시 히로시마 전체가 핵폭발과 섬광, 후폭풍과 화재로 일시에 폐허로 변하는 바람에 공식기록조차 남아있지 않은 탓이다. 이제부터라도 한·미·일 공동조사를 통해 피해 진상을 엄밀히 따져야 하고, 일본과 미국은 피해자들에게 응분의 가해책임을 다해야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한 27일 한국 원폭피해자 단체 회원들이 공원 안 한국인 위령비 앞에서 희생자를 애도하고 있다. 히로시마_AP연합뉴스

오바마대통령이 이번 히로시마 방문길에 ‘한국인 희생자 비석’에 들러 애도하지 않은 것은 한국 외교부 대미 교섭의 구멍이고, 미국 대통령의 대국주의 탓에 빚어진 성의 부족이다.

오바마가 잠시 들렀던 히로시마평화기념자료관 안내 책자의 기조는 일본인 희생과 피해를 엄청나게 부각해 놓고 있다. 그리고 일왕이나 제국군대의 책임에 대해 아무런 사실 인정도 하지 않고, 사과하거나 용서를 비는 글귀는 찾아볼 수 없다. 아베 총리는 이런 일본의 우익시각을 극적으로 대변하는 정치인으로서 이번 사안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오바마는 히로시마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자신의 노력을 상기시키고 원자폭탄 보유국이 지녀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지적했다. 나아가 원폭 개발 및 기술 유출, 보유 원폭 폐기 등 전면적이고 근본적인 책임, 원폭 폐절을 강조했어야 한다. 핵 없는 세계를 위한 용기는 원폭 그 자체의 부정과 폐기여야 했다.

원폭은 인류가 자기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 너무나 무서운 전쟁수단의 하나다. 그러므로 2009년 프라하 연설에서부터 시작된 오바마의 핵 없는 세계를 위한 비전은 충분히 공감하는 대목이다. 미국의 이란 핵협상 타결과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은 이런 비전을 실천하는 행보로써 매우 유의미하다. 그러나 이런 데까지 이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군비 축소와 보유 원폭의 해체는 거론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오바마와 아베의 동행은 지역 내 군사적 긴장과 대결의 출발점이다. 동아시아에서 군사적 불균형과 대립을 촉발하는 모멘텀이다. 한·미·일 군사훈련을 하고, 일본 군함이 욱일승천기를 달고 국내 항구에 정박하는 그림을 상상해 보시라. 동아시아 지역의 바다는 평화의 바다, 생명의 바다 그대로 남아야 한다.


허상수 | 지속가능한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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