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과 관련해 어처구니없는 일이 또 벌어졌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개성공단 북한근로자 임금이 북한의 핵과 로켓 개발에 유입됐다는 증거자료가 없다며 종래의 입장을 번복한 것이다. 홍 장관은 어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자금 유입의 증거자료를 대라고 하자 “자금이 들어간 증거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와전됐다”고 말했다. 그는 “상황의 엄중성과 국가 안보를 위해 꼭 필요한 조치이고 그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차원에서 했던 말”이라며 “설명이 충분치 못해 오해와 논란이 생겼는데 국민과 의원들께 송구하단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북핵·로켓 개발 자금 전용 발언에 대해 증거가 있느냐는 물음에 홍 장관이 구체적인 자료가 있는 것처럼 대답한 것이 바로 하루 전이다. 이렇게 국민을 우롱해도 좋다는 말인가.
개성공단 북한근로자 임금의 북핵·로켓 개발 전용은 정부가 제시한 공단 전면 중단의 핵심적인 사유다. 정부는 중단 성명에서 “더 이상 개성공단 자금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증거자료가 없다면 이런 주장은 공허해진다. 홍 장관의 국회 발언은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의 명분과 정당성이 없다는 것을 정부 스스로 자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남북경협의 상징이자 성공 모델로 평가받아온 개성공단이 이렇게 허망하게 문을 닫을 수는 없다.
그러나 홍 장관은 증거가 없다면서 개성공단 자금이 북핵·로켓 개발에 사용된 것은 맞다고 주장하고 있다. 억지 주장으로 남북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의 정체성과 남북 경협의 의미를 부정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홍 장관은 국회 답변 과정에서도 거짓말을 했다. 지난 12일 정부 합동브리핑과 지난 14일 방송에서 “증거자료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고도 국회에서는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공단 전면 중단 조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근거없는 말을 했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자 또 거짓말로 국민을 호도하려 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이는 애초 정부의 공단 전면 중단 자체가 전적으로 잘못된 조치였다는 걸 말해준다.
정부의 조치는 법적 근거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헌법은 물론 어떤 국내법도 한국기업의 공단 내 기업 활동을 금지하고 재산권 행사를 막는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지 않다. 북핵·로켓 개발 전용을 정부 스스로 인정하는 바람에 유엔 안보리 결의안 위반 논란도 벌어졌다. 이런 엄청난 파장을 감수하면서까지 강행한 공단 전면 중단의 핵심 사유가 알고 보니 근거가 없단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홍 장관이 이제와서 말을 주워담는 연유를 짐작 못할 바는 아니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의 반발 등 갈수록 파장이 커지는 데다 증거를 대라는 여론이 커지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것이다. 특히 보수층과 여당마저 북핵·로켓 개발 자금 전용 사실을 알고도 공단을 계속 운영해왔느냐고 비판하자 비난을 무릅쓰고 입장 번복을 결심한 것 같다.
홍 장관은 국무위원으로서 소양과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다. 물론 이번 일이 홍 장관 혼자 벌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박 대통령이 최종 결정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터이다. 대통령의 잘못된 결정을 장관이 뒷감당하다가 일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홍 장관의 잘못이 덮어질 수는 없다.
이제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둘러싼 진실은 명백히 드러났다. 개성공단 중단은 근거 없는 부당한 조치였다. 장관의 사과로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태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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